SK에너지 울산공장의 에너지 저장장치(ESS) 화재로 관련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이미 국내에서 33차례의 ESS 관련 화재가 발생했고, 원인 규명이 이뤄지지 않아 시장이 계속 위축되고 있다. 정부는 ESS 화재로 관련 규제를 강화한 전례가 있어 업계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18일 소방당국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ESS에서 화재가 발생한 SK에너지 울산공장에 대한 합동감식이 이날부터 진행될 예정이다. 소방당국은 내부 보강작업을 마무리하면 곧바로 화재 원인을 조사할 계획이다. 이 화재는 ESS가 있는 배터리 보관동에서 발생했다. ESS에서 화재가 시작됐는지 다른 곳에서 발생한 불이 옮겨붙은 것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화재를 포함해 국내에선 2017년 8월 이후 총 33건의 ESS 관련 화재가 발생했다. 계속되는 ESS 화재에 정부는 3차에 걸쳐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지만,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정부는 2019년 1월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민관합동 조사위원회를 발족해 운영관리와 배터리 보호시스템 미흡 등을 화재 원인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화재가 계속되자 그해 10월 2차 조사위를 꾸렸다. 2차 조사에서는 1차와는 달리 배터리 결함을 화재 원인으로 꼽았다. 이후 정부는 2차 조사 결과를 토대로 옥내는 80%, 옥외는 90%로 ESS 가동률을 제한했다.

지난 12일 오전 SK에너지 울산공장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당국이 진압작업을 벌이고 있다./ 울산소방본부 제공

신재생에너지와 연계한 ESS의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중치도 0으로 조정했다. 과충전을 막아 안전조치 이행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본래 태양광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ESS에 저장하면 REC 가중치를 5.0으로 적용했다. REC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전력을 생산한 만큼 발급되는 인증서다. 이 인증서가 있어야 하는 발전사들에게 판매해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ESS를 설치하면 투자 비용이 많지만, 간헐적인 신재생에너지를 보완할 수 있기 때문에 설치 독려 차원에서 5배의 수익을 보장해준 것이다.

이런 규제 강화에도 화재가 발생하자 정부는 지난해 3차 조사위를 꾸렸다. 3차 조사위는 조사를 모두 마쳤으나 결과 발표는 미뤄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울산 ESS 화재가 3차 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ESS 화재로 3년 동안 3번의 진상조사위가 꾸려졌다는 것은 정부도 확실한 화재 원인을 찾지 못했다는 의미"라며 "현재 많은 사업자가 추가 규제로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이미 시장이 쪼그라들고 있는데, 추가 규제가 나오면 업계는 모두 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등 배터리 업계도 이번 화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SK온은 지난해 반기보고서를 통해 ESS 시장 재진출 의사를 밝혔다. 2015년 시장에서 철수한 지 6년 만이다. 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통해 폐배터리를 ESS로 사용하는 사업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도 중국 업체들이 주도하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개발해 ESS에 우선 적용하기로 했다. 양사가 ESS 시장을 신성장동력 사업으로 육성하려는 단계에서 또다시 규제 가능성이 부각된 셈이다.

ESS 화재가 계속되면 정부의 신재생 에너지 보급 정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6월 탈원전을 공식 선언한 후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ESS 보급을 늘려왔다. 신재생 에너지는 날씨나 기후에 따라 발전량이 들쑥날쑥해 ESS 설치가 필수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신재생 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만큼 ESS를 설치하려면 최소 1000조원에 달하는 비용이 소요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국내 ESS 시장은 정부가 규제를 강화한 시점부터 30~40%가량 축소됐다. 국내 ESS 신규 설치 건수는 2016년 62건에서 2017년 267건, 2018년 985건으로 성장했다가 2019년에 472건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2020년에도 582건에 그쳤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신규 설치 건수는 고점이었던 2018년보다 50% 이상 줄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