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의 결합이 무산되면서 한국 조선업종의 고질병으로 꼽히는 '저가 수주'가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초 정부는 빅3(현대·대우·삼성) 체제를 '빅2′ 체제로 재편하면 중복 투자가 줄고 과당 경쟁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한국 조선 3사가 서로 경쟁하기보다 협력을 택해야 중국과 일본 조선사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14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부문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010140) 등 조선 3사 모두 지난해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간 영업손실 전망치는 각각 6600억원, 1조3000억원, 1조1400억원이다. 지난해 조선 3사 모두 연간 수주 목표를 초과 달성했음에도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는 선박 수주에서 건조까지 2~3년이 걸려 당장 수주 물량이 실적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업계에선 조선 3사 모두 지난해 적자를 기록한 것을 두고 저가 수주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최근 몇 년간 수주량이 목표치를 밑돌자, 독(dock·배를 만드는 건조장)을 채우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싼값에 선박을 수주해온 것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설비 유지비와 인건비 등 고정비를 부담하려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지난해 선박 건조 비용의 20%를 차지하는 후판(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 가격까지 톤(t)당 60만원대에서 120만원까지 2배 가까이 오르면서 수익성은 더 악화됐다.
국내 조선업계의 저가 수주 전략은 오랜 고질병이다. 조선업계는 2000년대 초 슈퍼사이클(초호황) 당시 설비 증설에 나섰다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발주가 끊겼을 때도 저가 수주에 나섰다. 성동조선, STX조선해양 등이 법정 관리를 받게 된 배경도 이때 출혈 경쟁에 따른 수익 악화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저가 수주가 원청뿐 아니라 중소 하청, 기자재 업체들까지 연쇄 타격을 줘 국내 조선산업 전체를 휘청이게 한다는 점이었다. 2019년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에 매각하고자 했던 이유도 이런 과당 경쟁 체제를 해소하기 위해서였는데, 전날 유럽연합(EU)이 두 조선소의 결합을 반대하면서 이같은 계획은 무위로 돌아가게 됐다.
한국 조선 3사가 과당 경쟁으로 흔들리는 사이 가격 경쟁력과 자국 정부의 막강한 지원을 받는 중국 조선사들이 부상하고 있다. 영국의 조선·해운 시황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전 세계 선박 발주량 4664만CGT(표준선 환산톤수) 가운데 37%인 1744만CGT를 수주해 2286만CGT를 수주한 중국에 밀려 2위를 차지했다. 2020년에는 건조 기술력에서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중국이 카타르로부터 16척의 LNG 운반선에 대한 슬롯 예약을 한국보다 먼저 따내기도 했다. 카타르가 에너지 수입 대국인 중국의 눈치를 본 결과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한때 조선 강국이었던 일본 역시 무시하기 어렵다. 친환경 선박 관련 기술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수소를 암모니아나 유기화합물, 액체수소 형태로 바꿔 선박을 통해 수송하는 기술은 한국보다 앞서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소 간 합종연횡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지난 1월 일본 조선사인 이마바리조선과 2위인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가 합작 회사인 '니혼십야드(NSY)'를 설립, 현재 차세대 친환경 선박으로 주목받는 암모니아 추진 선박을 개발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자국 조선소들에 지원 강화를 골자로 한 법안을 통과시켜 저금리 대출과 기술 개발 보조금 등을 지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조선업계가 아직 경쟁 우위에 있지만,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박사는 "과거처럼 조선 3사가 서로 경쟁하는 구도에선 중국과 일본의 맹추격을 피하기 어렵다"며 "환경 규제 강화로 친환경 선박 개발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3사가 합작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의 협력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조선업 담당 애널리스트도 "중국이 꾸준히 LNG선 건조 경험을 쌓는다면 한국과 격차를 좁히는 건 시간 문제"라며 "효율적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