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반대로 현대중공업그룹과의 기업결합이 사실상 무산된 대우조선해양의 정상화 작업이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은 새로운 인수 기업을 찾을 수밖에 없는데, 대우조선해양의 열악한 재무 구조와 사실상 레드오션(포화상태)인 조선 시장 업황을 고려할 때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4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전날 두 조선사의 기업 결합을 승인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019년 12월 두 회사의 기업결합심사를 시작한 이후 2년 2개월 만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이 시정요구 등 가능한 대응 방안을 종합적으로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지만, 매출 대부분이 유럽 선사들과의 계약에서 나오는 만큼 유럽의 불승인으로 사실상 이번 빅딜은 무산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대우조선해양 제공

대우조선해양 지분 55.7%를 보유한 산업은행은 재매각을 추진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인수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포스코(POSCO), SM그룹, 한화(000880) 등이 거론된다. 포스코그룹은 조선 후판을 생산해 대우조선과 시너지를 낼 수 있고 SM그룹은 컨테이너와 벌크 해운업을 하고 있어 대우조선을 인수하면 수직 계열화가 가능하다. 한화그룹은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했으나, 산업은행의 거부로 무산된 바 있다. EU가 독과점을 이유로 반대한 만큼 삼성중공업(010140)과의 합병은 불가능할 전망이다. 해외 매각 역시 액화천연가스(LNG)선 설계 노하우와 방위산업 관련 기술 유출 우려로 가능성은 매우 낮다.

관건은 대우조선해양이 새 주인을 찾을 때까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지다. 대우조선해양은 과거 오랜 불황으로 수익 창출 능력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상태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인수 계약을 체결하기 직전인 2018년만 해도 대우조선해양은 연간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하지만 '수주 절벽' 여파가 누적되면서 2020년 대우조선해양의 연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분의 1 수준인 3000억원으로 하락했다. 지난해엔 대우조선해양이 연간 수주 목표를 초과 달성했지만, 수주 물량은 2~3년 뒤에야 실적으로 반영되기 때문에 작년엔 1조3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적자로 전환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증권업계는 대우조선이 올해도 800억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재무건전성도 악화되고 있다. 차입금의 전체 규모는 줄었지만, 이를 상환할 능력은 더 크게 줄어드는 모양새다. 2018년 말 137%였던 대우조선해양의 유동비율은 작년 3분기 말 94%까지 떨어진 상태다. 유동비율이 100% 아래인 것은 보유한 유동성 자산으로 대출을 전부 갚을 수 없다는 뜻이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은 210%에서 297%로 늘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기업결합이 순조롭게 진행됐다면 최대 2조5000억원의 유동성을 지원받을 수 있었는데, 빅딜 무산으로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고 말했다.

수출입은행이 보유한 2조3328억원 규모의 대우조선해양 영구 전환사채(CB)도 문제다. 당초 지난해 말 예정돼 있던 스텝업(금리 조정)이 올해 12월 31일로 1년 유예된 상태인데, 대우조선해양의 신용등급(BBB-)을 고려했을 때 올해까지 1%인 금리는 내년에 8% 이상으로 높아질 수 있다. 이럴 경우 연간 240억원 정도인 전환사채 이자 비용이 내년부터 1800억원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신용등급을 올리면 이자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현대중공업그룹과의 합병이 불발되면서 등급 하락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최근 업황이 회복되고 있는 점은 대우조선해양에 호재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77억 달러 규모의 일감을 수주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지만, 이를 40% 초과한 108억 달러 규모의 선박과 해양플랜트를 수주했다. 올해도 연초부터 LNG 운반선 2척, 해양플랜트 1기 등 총 10억 달러에 가까운 실적을 기록한 상태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수주 활동에 집중하는 것 외에는 따로 밝힐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