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대기업 지주사가 금융회사 성격의 기업형벤처캐피탈(CVC·Corporate Venture Capital)을 계열사로 둘 수 있게 되면서 대기업의 벤처 투자가 활성화될 전망이다. 이미 GS(078930)가 CVC 설립을 발표했고 SK(034730)LG(003550)도 관련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 벤처 투자를 넘어 미래 성장동력 사업을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LG는 지난해부터 홍범식 ㈜LG 경영전략팀장(사장)이 직접 국내 벤처캐피털 관계자들과 만나 CVC 설립을 추진했다. 홍 사장은 최근 투자심사역 등 전문 인력 영입도 진행했다. LG는 1분기 중 CVC 설립을 공식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LG 관계자는 "CVC 설립을 위한 준비 작업이 진행되고 있고 법인 설립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효성(004800)도 지주사 산하에 CVC 설립을 위한 내부 인력을 충원하고 외부 전문가 영입 등을 검토하고 있다. SK와 현대중공업도 CVC 설립을 검토 중이다. 신세계(004170)·이랜드 등은 이미 출범한 CVC에 새 펀드 조성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의 벤처캐피탈 삼성넥스트./삼성전자 제공

GS는 대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자본금 100억원을 출자해 CVC인 GS벤처스를 설립했다. GS벤처스는 바이오·기후변화 대응·자원 순환·유통·신에너지 등 신성장 분야의 국내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투자한다. 허준녕 GS벤처스 신임 대표는 미래에셋 글로벌투자 부문과 UBS 뉴욕 본사 등에서 기업인수합병 업무를 담당한 투자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1조9000억원에 매각된 영상 기술 기업 하이퍼커넥트의 CFO(최고재무책임자)를 맡기도 했다.

CVC는 대기업이 출자하는 벤처캐피탈이다. 지난해 12월30일 대기업 지주사의 CVC 설립을 허용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됐다. 그동안 대기업 지주사는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에 따라 금융사에 해당하는 벤처캐피탈을 소유할 수 없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자본력과 사업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는 대기업이 신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에 장기투자하고, 필요시 투자한 스타트업을 인수합병(M&A)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대기업은 국내 규제를 피해 주로 해외에서 CVC를 운영했다. 삼성그룹은 삼성벤처투자·삼성넥스트·삼성카탈리스트펀드 등 3개의 CVC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넥스트와 삼성카탈리스트펀드는 미국 실리콘밸리, 이스라엘, 독일 등 해외에 거점을 두고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사물인터넷(IoT) 등의 기술력을 보유한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현대차(005380)그룹은 2017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벤처투자사인 현대크래들을 출범했다. 현재는 독일, 이스라엘, 중국 등에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를 운영 중이다. 현대차는 해외 벤처 투자뿐 아니라 한국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돕기도 한다.

현대차그룹의 벤처캐피탈 현대크래들의 글로벌 거점./현대차 제공

LG그룹은 2018년 LG전자(066570)·LG디스플레이(034220)·LG화학(051910)·LG유플러스(032640) 등 4개 계열사를 통해 4억달러 규모의 벤처 투자 펀드를 출자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LG테크놀로지벤처스를 설립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2019년 취임 후 첫 해외 출장지로 LG테크놀로지벤처스를 선택했을 만큼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대기업의 벤처투자가 사회 공헌의 일환이었다면 최근에는 유망한 기업에 투자해 기술력을 확보하고 혁신 성장의 기회도 얻는 방식으로 진화했다"며 "이미 대기업은 해외에서 벤처투자 노하우를 충분히 쌓았기 때문에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에도 큰 공헌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