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경쟁당국이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중간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을 불허할 것이란 전망이 잇달아 나오면서, 그 배경으로 액화천연가스(LNG)선이 지목됐다. 하지만 LNG선은 고부가가치 선종일 뿐만 아니라 2030년대까지 성장 잠재력이 커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 모두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12일 조선·해운업계에 따르면 LNG선 시장은 최근 10년간 성장세를 보였다. LNG 수입국은 2010년 23개국에서 2020년 42개국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수송구간도 163개에서 314개로 뛰었다. 그만큼 선대 확장이 필요했고 LNG선 발주로 이어졌다. LNG선 시장 성장의 과실은 우리나라 조선사의 몫이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발주한 LNG선 78척 가운데 68척(87%)을 수주했다.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만 놓고 봐도 각각 32척, 15척을 수주해 전 세계 점유율 60.3%를 기록했다.
이 같은 경쟁력이 합병에는 걸림돌이 됐다. EU 경쟁당국은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을 승인하면, LNG선 시장 내 영향력이 과대해지고 결과적으로 LNG선 선가가 뛸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미 LNG선 가격은 2020년말 1억8600만달러(약 2210억원)에서 2021년말 2억1000만달러(약 2500억원)로 뛰었다.
LNG 운송비용과 중요성도 커졌다. 17만4000㎥급 LNG운반선의 하루 운임은 20만달러(약 2억4000만원)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경제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유럽과 러시아 간 분쟁으로 LNG 육상 수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해상 수송이 안보 이슈가 된 것도 부담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U 경쟁당국은 사실상 현대중공업그룹에 LNG선 사업부문을 떼어 팔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LNG선의 미래 가치를 따져 볼 때 현대중공업그룹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예를 들어 LNG선 선대 가운데 단기 용선되는 선박의 비중은 10%를 밑돌고 있다. 하지만 최근 장기 용선계약을 맺지 않고 건조되는 LNG선이 늘면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초대형 원유운반선 시장처럼 LNG선도 단기 용선 비중이 40% 가까이 늘면 그만큼 선대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LNG선 발주가 계속될 것이란 의미다.
LNG운반선뿐만 아니라 다른 선종에서도 LNG 연료 도입이 빨라지고 있다. 현재는 LNG 추진선의 56%가 LNG 운반선인데, 국제해사기구(IMO) 등의 환경 규제에 따라 대형 컨테이너선과 건화물선, 벙커링선 등도 LNG 연료를 활용하고 있다. 2030년 기준 전체 선박 연료 시장에서 LNG 비중이 30%까지 확대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마찬가지로 LNG선 발주가 늘어날 요인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LNG선은 경쟁력으로 보나 수익성으로 보나 핵심 알짜 사업이라 현대중공업이나 대우조선해양이 매각하기 어렵다”며 “EU 경쟁당국의 주장이 몽니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다른 대안도 마땅치 않아서 문제다”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은 2019년부터 추진 중이다.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해 카자흐스탄, 싱가포르, 중국, EU, 일본 경쟁당국에 기업결합 심사를 요청했다. 현재까지 카자흐스탄과 싱가포르, 중국의 승인을 받았다. 유럽이 최대 선주사, 선사 시장이어서 EU 경쟁당국의 승인 여부가 주목받아왔다. 결과는 오는 20일 전에 나올 예정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아직 EU 경쟁당국의 조건없는 승인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조선시장은 단순 점유율로 지배력을 평가할 수 없고, 특정업체의 독점이 어려운 구조”라며 “EU 경쟁당국도 조건 없는 승인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