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180640)의 재무 사정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의 여파로 계열사가 어려움을 겪자 배당과 상표권 수입이 감소한 영향이다. 여기에 계열사 지원 명목으로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1조원이 넘는 자금 지출까지 발생했다. 지난해 한진칼이 순손실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2년 연속 배당을 하지 않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작년 3분기 말 별도 기준 한진칼의 유동비율은 약 17%로 나타났다. 작년 초 유동비율은 153%였다. 유동비율은 1년 내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유동자산)을 1년 내 갚아야 하는 부채(유동부채)로 나눈 값을 말한다. 유동비율이 100%보다 낮다는 것은 대출 만기가 돌아왔을 때 현재 가진 현금 등 유동성 자산으로 다 갚을 수 없다는 뜻이다. 통상 신용평가사는 평가 기업의 유동비율이 100% 아래로 떨어질 경우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

서울 중구에 있는 한진빌딩 전경. /연합뉴스

한진칼의 유동성에 빨간불이 켜진 배경에는 계열사에 대규모 지원을 집행한 데 있다. 한진칼은 2020년 주요 계열사인 대한항공(003490), 한진(002320), 진에어(272450) 등이 실시한 유상증자에 참여하기 위해 총 4019억원을 출자했다. 2021년에도 8637억원을 출자해 대한항공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작년 11월 자금난에 시달리던 진에어가 실시한 유상증자에 한진칼이 다시 한번 참여한 점을 미뤄보면, 유동비율은 작년 3분기 대비 더 낮아졌을 것으로 보인다.

한진칼의 주요 수입원인 계열사 배당과 상표권 사용료가 줄어든 점도 유동성 위기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한진칼은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에만 해도 배당금 274억원, 상표권 사용료 290억원, 부동산 임대수익 87억원 등 총 65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2020년에는 배당금 171억원, 상표권 사용료 163억원, 부동산 임대수익 72억원 등 총 41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약 36% 줄어든 셈이다. 지난해에도 사정은 비슷했는데, 1~3분기 누적 매출액(별도 기준)은 24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 떨어졌다.

한진칼의 수입이 줄어든 것은 코로나19에 따른 계열사들의 부진 탓이 크다.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은 결손금을 털어내지 못하면서 무배당 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작년 3분기 말 기준 대한항공의 결손금 규모는 104억원이다. 화물 사업 호황으로 결손금을 줄여나가고 있어 4분기부터 잉여금을 쌓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불투명한 영업환경 탓에 배당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자본잠식 위기에 처한 진에어도 2020년부터 배당을 하지 않았다. 상표권 사용료 산정의 기준이 되는 계열사의 매출액이 줄어드는 점도 한진칼의 수입이 줄어든 이유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진에어의 경우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한진칼의 지원이 다시 한번 필요해질 수 있는데, 유동성 위기에 빠진 한진칼이 지원에 나설 수 있을지 미지수다. 여기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020560)의 합병까지 지연되면서 추가 자금이 필요해질 수도 있다. 원·달러 환율 상승과 리스비 부담으로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이 3668%까지 치솟으면서 부실이 깊어지고 있다. 당초 대한항공이 예상한 인수대금 1조8000억원 외에 추가 자금이 필요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의 대한항공 항공기 모습. /연합뉴스

한진칼이 2년 연속 배당을 하지 않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배당의 기준이 되는 별도 기준 재무제표 전망치는 나오지 않았으나, 지난해 1분기부터 3분기까지 순손실이 977억원 누적된 만큼 연간 순이익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한진칼은 당기순이익의 50%를 배당급으로 지급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어, 순손실을 기록할 경우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34억원의 연간 순손실을 기록했던 2020년도에도 배당을 하지 않았다. 한진칼 관계자는 "배당 실시 여부와 관련해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고 말했다.

지주사의 배당이 끊기면 상속세 재원 마련이 절실한 한진가(家) 3세들의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2019년 조양호 전 회장 별세 이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현민 한진 부사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은 총 2700억원 규모의 상속세를 5년에 걸쳐 나눠내고 있다. 급여와 배당금이 상속세 마련의 주요 수익원인 만큼, 지주사의 배당금이 끊기면 상속세 재원 마련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조 전 부사장이 지난해 200만주에 달하는 한진칼 주식을 매도한 것도 상속세 마련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