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취임 4년차를 맞은 조원태 한진(002320)그룹 회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조현아 전 부사장과의 경영권 분쟁을 딛고 ‘3세 경영 체제’ 굳히기에 나서고 있다. 대한항공(003490)아시아나항공(020560) 합병이라는 그룹 최대 과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경우 조 회장의 그룹 장악력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조중훈 한진 창업주의 손자이자 조양호 회장의 아들인 조원태 회장은 1976년생이다. 2002년 한진정보통신에 입사해 한진그룹에 합류한 조 회장은 2004년 대한항공으로 적을 옮긴 뒤 자재부, 여객사업본부, 경영전략본부, 화물사업본부 등 주요 부서를 돌며 경영 수업을 받았다. 2014년 1월부터는 대한항공 경영전략 및 영업부문 총괄부사장과 한진칼(180640), 대한항공, 진에어(272450) 대표이사를 거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섰다. 그러던 중 2019년 4월 선친인 조양호 회장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회장직을 물려받게 됐다. 그룹 합류 17년 만이다.

그래픽=이은현

한진그룹 안팎에 따르면 조 회장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위기 대응’과 ‘소통’이다. 취임 이듬해인 2020년 코로나19 사태라는 초유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 조원태 회장은 여객 사업이 직격탄을 맞자 화물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승객이 없어 뜨지 못하는 여객기의 좌석을 떼어내 화물기로 개조하고, 좌석 위에 화물을 고정하는 ‘카고시트백’을 도입했다. 기존에 보유한 화물기 23대 외에 화물전용 여객기 16대를 추가 투입하고 방역물품, 전자 상거래 물량, 반도체 장비 등을 전 세계 각지에 수송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대한항공은 2020년에 전년 대비 약 10% 증가한 74억FTK(톤킬로미터·각 항공편 당 수송 톤수에 비행거리를 곱한 것)의 수송 실적을 기록할 수 있었다.

조 회장의 화물 강화 전략은 대한항공이 글로벌 대형 항공사 중 유일하게 흑자를 이어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지난해 연간 1조1578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전년 대비 963% 오른 수준이다. 대한항공의 연간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긴 것은 2016년 이후 5년 만이다. 재계 관계자는 “여객기를 화물기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는 조 회장이 직접 제안한 것”이라며 “일선 부서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위기에서 빛을 발했다”라고 말했다.

젊은 총수답게 조 회장은 ‘소통 경영’을 중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내 익명게시판에 직접 답변을 달거나 사업 현장을 방문해 직원의 목소리를 듣고 경영에 반영하는 탈권위적인 조직 문화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과거 남성 사무직 직원의 복장은 정장과 넥타이가 원칙이었는데, 회장 취임 이후 완전 복장 자율화를 도입했다. 2020년에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직원 자녀 720명에게 ‘대한항공 조원태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축하 카드와 선물 세트를 전달하기도 했다.

대한항공 사옥./조선DB

조 회장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도 공고한 상태다. 조 회장 취임 직후 누나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KCGI(강성부 펀드), 반도건설과 손잡고 이른바 ‘3자연합’을 구성해 경영권 분쟁을 벌였으나, 아시아나항공 합병 과정에서 한진칼 주주로 등장한 산업은행이 조 회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실패로 끝났다. 작년 4월엔 3자연합이 주식공동보유 계약을 종료하며 해체된 데 이어 조 전 부사장까지 한진칼 주식 절반을 팔아치우면서 사실상 경영권 분쟁을 포기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여전히 KCGI와 반도건설 계열사인 대호개발이 30%가 넘는 한진칼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산업은행이 주주로 버티고 있는 이상 경영권 분쟁을 다시 일으키긴 어려울 것이란 게 재계 중론이다.

조 회장에게 남은 최대 과제는 아시아나항공(020560) 인수다. 최근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두 항공사의 결합을 승인하기로 잠정 결론을 내렸지만, 미국·유럽연합(EU)·중국·일본·영국·싱가포르·호주 등 7개 국가에선 심사가 지연되면서 아시아나항공의 부실이 커지고 있다. 당초 대한항공은 1조8000억원의 인수대금을 예상했으나 아시아나항공의 부실이 커지면 추가 자금 투입이 불가피하다. 작년 3분기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별도 재무제표 기준 부채비율은 3668%에 달했다. 이는 전년 3분기 대비 1236%포인트(P) 오른 수준이다.

조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비해 비주력 자산 매각에 속도를 내 현금을 다량 확보해 두겠다는 계획이다. 작년 12월엔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를 서울시에 5578억원에 매각했고 왕산레저개발과 제주칼호텔까지 차례로 매각하면 수천억원의 현금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직원의 고용 불안 우려를 잠재우는 것도 조 회장의 몫이다. 조 회장은 두 항공사 합병 이후 인력 조정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동종 업계인 두 항공사의 업무는 중복될 수밖에 없다. 항공업계에선 두 회사의 통합으로 업무가 중복되는 간접 인력이 1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항공기 모습. /연합뉴스

아시아나항공 통합 이후 운수권(다른 나라에 항공기를 보내 여객·화물을 탑재·하역할 수 있는 권리)과 슬롯(항공기가 공항에서 해당 시간대 운항을 허가받은 권리) 제한에 따른 대비책도 필요하다. 공정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결합을 승인하는 대신 두 항공사의 운수권을 다른 항공사에 재배분하고 슬롯을 줄이는 방향의 조건부 승인을 내릴 계획이다. 해외 경쟁 당국에서도 공정위 방침과 유사한 수준의 제한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이를테면 지금은 두 항공사가 하루에 10번 중국에 띄우는 항공편을 5번으로 줄이는 식이다.

늘어난 덩치에 비해 항공기를 띄울 수 있는 횟수가 줄면 항공사의 수익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두 회사의 통합으로 업무가 중복되는 간접 인력만 1000명이 넘으며, 보유 항공기도 156대(대한항공 작년 3분기 기준)에서 236대로 50% 늘어난다. 국내외 경쟁 당국의 제한 조치가 현실화될 경우 통합 항공사는 인력과 항공기를 효율적으로 운용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경쟁 당국의 조치로 통합 항공사가 항공편 공급을 줄이면 사업 경쟁력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도 “코로나19 위기는 화물 사업 확대로 무사히 넘겼지만, 진짜 위기는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 이후”라며 “사업구조 재편 등 두 항공사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통합시키는지가 조원태 회장의 리더십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