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이자 유력 차기 총수인 김동관 한화솔루션(009830) 사장이 그룹 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룹 핵심 계열사인 ㈜한화(000880)의 지분율을 늘려 그룹 전반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수소와 친환경 에너지, 우주사업 등을 진두지휘하며 한화의 밑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재계는 김 사장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한화의 경영 승계 작업이 조만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사장은 올해로 한화그룹에 입사한 지 13년차가 됐다.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병역 의무를 마친 뒤 만 27세였던 2010년 1월 ㈜한화 회장실 차장으로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회장실에서 그룹 전반의 업무를 익힌 그는 이듬해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으로 자리를 옮겨 태양광 사업에 합류했다. 2010년 중국 솔라펀파워홀딩스를 인수해 한화솔라원으로 이름을 바꾼 지 막 1년이 지났던 때였다. 현재 한화솔루션은 미국 태양광 모듈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 시작에 김 사장이 있었다.

김 회장은 2012년 독일 태양광 기업 '큐셀(현 한화큐셀)'을 인수했다. 당시 태양광 산업은 뚜렷한 수익 구조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국 기업과의 출혈 경쟁까지 겹쳐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다. 김 회장은 시장의 우려에도 전격 인수에 나섰고, 2014년 흑자 전환을 이뤘다. 김 사장은 성장 궤도에 진입한 한화큐셀과 한화솔라원을 2015년 한화큐셀로 통합하며 그룹 태양광 사업을 재정비했고, 그 결과 2016년 미국 시장점유율 1위에 오른 데 이어 2017년 일본 1위, 2018년 독일 1위를 차례로 달성했다.

그래픽=이은현

김 사장은 한 수 앞을 내다보는 과감한 베팅으로 친환경 에너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그가 이끄는 한화솔루션은 2020년 7월 미국 에너지 관리시스템 소프트웨어 업체 젤리의 지분을 100% 인수했고, 같은 해 12월엔 미국 수소 고압탱크 업체 시마론 지분을 100% 사들였다. 작년 7월엔 유기발광다이아오드(OLED) 소재 기술 업체인 더블유오에스 지분 100%, 8월엔 프랑스 재생에너지 개발업체 RES프랑스 지분 100%를 각각 인수했다. RES프랑스 인수전 때는 프랑스 최대 에너지기업 토탈 등 유럽 굴지의 기업들이 유력 후보로 꼽혔지만, 뒤늦게 인수전에 뛰어든 김 사장이 1조원이라는 금액을 써내 품에 안았다.

김 사장이 한화솔루션 부사장을 맡기 직전인 2019년 말까지만 해도 한화솔루션의 시가총액은 3조439억원이었지만 지금은 두 배가 넘게 성장했다.

친환경 에너지 외에도 김 사장은 그룹의 다양한 산업에 관여하고 있다. 2020년부터 그룹 주요 사업의 미래전략방향을 수립하는 ㈜한화의 전략부문장을 겸임하고 있고, 작년 3월부터는 그룹 우주사업 총괄 조직인 스페이스허브 팀장을 맡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는 지난해 위성시스템업체 쎄트렉아이(099320) 지분 30%를 인수했는데, 김 사장은 이곳의 무보수 등기임원도 맡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주요 그룹 중 가장 미래 지향적인 사업에 집중하고 있는 곳은 단연 한화"라며 "김 사장의 주도 하에 한화의 사업 구조가 새롭게 쓰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화시스템이 개발하고 있는 초소형 SAR위성. /한화시스템 제공

김 사장의 그룹 지배력도 점차 커지고 있다. 김 사장이 지분 50%를 보유한 한화에너지는 그룹 핵심 계열사인 ㈜한화의 지분을 잇달아 매입하고 있다. 현재 한화에너지의 ㈜한화 지분율은 9.7%로 김 회장(22.65%) 다음으로 많다. 한화에너지 다음으로는 각각 7.67%, 4.44%를 보유한 국민연금과 김 사장이 뒤를 잇고 있다. 재계에서는 김 사장이 보유한 ㈜한화의 직·간접 지분을 통해 그룹 전반에 대한 지배력을 갖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는 한화생명(088350)·한화건설·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솔루션과 같은 주요 계열사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핵심 계열사다.

김 사장의 '태양광 멘토'로 불리는 김희철 한화임팩트 대표이사가 작년 10월부터 한화에너지 대표를 겸임하고 있다는 점도 김 사장의 지배력 확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화임팩트는 신기술 발굴·투자를 통해 2020년에만 2286억원의 순이익을 올린 곳으로, 한화에너지가 지분 52%를 보유하고 있다. 한화임팩트가 이익을 내 한화에너지에 배당하면 한화에너지는 이 자금으로 ㈜한화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는 구조다. 핵심 계열사의 수장을 맡은 김희철 대표가 승계 구상의 '키맨' 역할을 기대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동원 한화생명 부사장(왼쪽)과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무./한화그룹 제공

김 회장의 차남인 김동원 부사장과 삼남인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무도 한화에너지 지분을 25%씩 보유하고 있다. 이들 역시 그룹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며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김 부사장은 한화생명 등 금융 계열사의 디지털 금융 서비스 개발을 추진 중이다. 승마 국가대표 출신인 김 상무는 승마를 프리미엄 레저 사업으로 키우기 위한 전략을 수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