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과 구광모 LG(003550)그룹 회장이 경영 화두로 '고객경험'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결합해 고객에게 한 차원 높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전략이다. 단순히 완성도 높은 제품을 판매하는 과거 경영 전략으로는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달 초 고객경험에 방점을 찍은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기존 가전(CE)부문과 모바일(IM)부문을 묶어 DX(Device eXperience·디바이스 경험)부문을 신설했다. DX부문 산하에는 'CX(Consumer eXperience)'와 'MDE(Multi Device eXperience)' 센터를 새로 만들었다. CX는 고객 경험, MDE는 멀티 디바이스 경험을 의미한다. 무선사업부는 25년만에 명칭을 'MX(Mobile eXperience·모바일 경험)사업부'로 변경했다. 이번 조직 개편에서 신설됐거나 명칭이 변경된 사업부가 모두 '경험(eXperience)'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이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구글 본사에서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와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삼성전자 제공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DX부문장)도 삼성전자 뉴스룸에 'CES 2022, 새로운 시대를 위한 혁신'이라는 기고문을 게재해 고객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 부회장은 "개인 맞춤화 기술이 더 좋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제품 간의 매끄러운 연결이 수반돼야 한다"며 "삼성전자는 앞으로 TV와 가전, 모바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품이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하나의 조직 속에서 한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의 고객경험 중심 조직 개편은 이재용 부회장이 미국 출장을 다녀온 직후 단행된 것이라 주목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24일 미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길에 기자들과 만나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들,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제가 직접 보고 오게 되니까 마음이 무겁다"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이런 위기감이 반영돼 조직 개편이 이뤄졌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2022년 신년사 영상 캡쳐./LG그룹 제공

구광모 회장은 2018년 취임 이후 고객 경험을 지속해서 강조해왔다. 구 회장은 특히 2022년 신년사를 통해 '가치 있는 고객 경험'을 경영의 핵심 키워드로 제시했다. 구 회장은 "지금까지 LG는 양질의 제품을 잘 만드는 일에 노력해 왔지만, 요즘 고객들은 그 이상의 가치를 기대한다. 고객은 제품·서비스 자체가 아니라 직접 경험한 가치 있는 순간들 때문에 감동한다"고 했다.

LG전자(066570)의 새 최고경영자(CEO) 조주완 사장도 취임 일성으로 고객 경험을 강조했다. 조 사장은 지난 23일 취임 후 첫 사내 메시지를 통해 'F·U·N'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F는 앞선(First), U는 독특한(Unique), N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New)을 뜻한다. 조 사장은 "고객 감동을 위해 F·U·N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구 회장이 LG전자 새 사령탑으로 글로벌 시장을 두루 경험한 조 사장을 선임한 것도 고객경험에 무게를 둔 것으로 해석된다. 조 사장은 CEO 선임 이전부터 'DX for CX(Digital Transformation for Customer eXperience)'를 꾸준히 강조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디지털 전환이 고객에게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고 이를 한번 경험한다면, 경험하지 않았던 때로 돌아가기 힘든 락인(Lock-in) 효과를 만든다"는 의미다.

이 부회장과 구 회장이 고객경험을 강조하는 것은 모든 것이 연결되는 '초연결(Hyper-connected) 시대'에는 단순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는 경쟁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애플이나 구글, 테슬라 등 글로벌 기업이 자신만의 생태계를 구축해 고객경험을 제공하는 것과 달리 국내 기업은 아직 이런 개념이 부족하다"며 "삼성과 LG가 어떤 고객경험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뉴삼성', '뉴LG'의 길이 더욱 선명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