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의 대한항공(003490)이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 매각을 완료하면서 5578억원의 현금을 확보하게 됐다. 한진그룹은 앞으로 왕산레저개발과 제주칼호텔 등 나머지 비주력 자산 매각에 속도를 내 유동성을 추가로 확보할 계획이다. 다만 매각 협의가 불발되거나 지역계 반발이 계속돼 난항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지난 24일 서울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송현동 부지를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에 따라 대한항공은 매매가의 85%인 4742억원을 영업일 기준 3일 내 지급받고 나머지 836억원은 내년 6월 말 등기이전이 완료되는 시점에 받게 된다. 작년 2월 부지를 매물로 내놓은 지 22개월 만에 결실을 맺었다.

왕산레저개발이 보유한 국내 최대 민간 해양 레저 단지 ‘왕산 마리나’ 전경. /대한항공 제공

◇ 유동성 확보에 비주력 자산 정리 ‘일석이조’

한진그룹은 이번 송현동 부지 매각에 이어 비주력 자산인 왕산레저개발과 제주칼호텔을 차례로 매각할 방침이다. 왕산레저개발은 인천 영종도의 해양레저시설 왕산마리나를 운영하는 회사다. 대한항공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2011년 설립 이후 단 한 해도 흑자를 낸 적이 없어 대한항공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혀오다가 지난해 매물로 나왔다. 제주칼호텔은 지주사 한진칼(180640)이 100% 지분을 보유한 칼호텔네트워크의 핵심 자산으로 코로나19 사태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항공이 비주력 계열사를 매각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2020년 5월 채권단에 제출한 자구안 때문이다. 당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대한항공에 1조2000억원을 지원했다. 이때 대한항공은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 송현동 부지 매각, 계열사 매각 등의 자구안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대한항공 입장에선 비주력 자산을 정리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한 셈이다.

아시아나항공(020560) 인수에 필요한 재원도 마련할 수 있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재무 건전성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기업 결합 심사가 지연되면서 당초 대한항공이 예상한 인수대금 1조8000억원 외 추가 자금이 필요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올해 3분기 아시아나항공의 별도 재무제표 기준 부채비율은 3668%로 작년 3분기 대비 1236%포인트(P) 올랐다. 항공 화물 호황으로 수익을 내고 있지만, 항공기 리스비와 법인세 미납금에 대한 충당금 등으로 당기순손실 규모가 커지고 있다. 대한항공 입장에선 아시아나항공의 부실이 커질수록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난 13일 오전 제주도청 앞에서 제주지역 27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이 함께하는 '제주칼호텔 매각 중단을 위한 도민연대' 출범 기자회견이 열렸다./연합뉴스

◇ 실제 매각까지는 산 넘어 산

비주력 자산 매각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다. 왕산레저개발의 경우, 작년 11월 칸서스자산운용·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과의 매각 협상이 불발된 데 이어 올해 10월에도 칸서스자산운용과의 매각 합의가 결렬됐다. 업계에선 매각 대금에 대한 양측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못하면서 연달아 합의가 불발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대한항공은 1300억원에 매각하길 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왕산레저개발 매각 불발은 세부적인 조건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매각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주칼호텔 매각도 지역 반발에 부딪힌 상황이다. 칼호텔 직원들로 구성된 이른바 ‘제주칼도민연대’가 지난 13일 출범하면서 고용 불안정을 이유로 호텔 매각을 반대하고 있다. 제주칼도민연대에 따르면 제주지역 국회의원 3명까지 반대 입장문을 발표했고, 8000명이 넘는 도민이 매각 중단을 요구하는 거리 서명에도 동참한 상황이다.

지난 23일엔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현장을 방문해 “기업의 이익에 따라 고용도 마음대로 내팽개치고 마음대로 투기업자한테 팔 수는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제주칼호텔에는 현재 카지노를 포함해 300명이 넘는 근로자가 종사하고 있다.

한진그룹은 비주력 자산 매각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룹 관계자는 “코로나19 장기화로 당장 내년에도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유동성 확보가 필요하다”며 “나머지 매물도 서둘러 인수자를 찾아 매각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