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기업들이 앞다퉈 안전 전담 부서를 신설하거나 담당 임원의 직급을 높이는 조직 개편에 나서고 있다. 안전 의무를 지키지 않아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최고경영자(CEO)가 형사처벌을 받는 만큼 책임 소재를 조금이라도 분산시키겠다는 전략이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포스코(POSCO)그룹은 최근 연말 정기 인사와 함께 조직 개편을 실시하면서 '보건기획실'이란 이름의 산업보건 관리조직을 출범시켰다. 작업자의 위생관리뿐 아니라 질병 및 감염병 방지, 유해인자 차단 등 직원들의 건강 보호·증진을 위해 신설됐다고 한다. 포스코그룹 관계자는 "이번 인사에서 상무보급 전체 승진 인원의 약 40%를 현장 출신으로 구성했다"며 "현장 생산과 안전의 중요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그룹도 올해 인사에서 안전 총괄 담당자들의 직급을 한 단계 높였다. 현대중공업의 한주석 안전생산부문장과 최헌 안전경영부문장을 각각 부사장과 전무로 승진시켰다. 안전생산부문장은 엔진기계사업부 생산현장의 안전을 총괄하는 자리이며 안전경영부문장은 전사 안전을 총괄한다.
삼천리그룹은 중대 재해에 대처하기 위해 회장단 직속의 '안전환경본부'를 신설했다. 재계 관계자는 "내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하라는 오너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공기업들도 안전 강화를 위한 조직 개편을 단행하고 있다. 한전KPS(051600)는 현장 근로자의 안전 보호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대응해 재난안전실을 재난안전처로 격상했다. 가스안전공사도 현장 안전관리기능 강화를 위해 설립 이래 최초로 '광역본부제'를 도입하고 기존 14개 지역본부를 7대 광역권으로 개편해 현장 책임경영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중대재해 발생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건설업계도 발 빠르게 안전 조직을 대대적으로 신설했다. 삼성물산(028260) 건설부문은 최근 종전 2개 팀이던 안전환경실을 안전보건실로 확대했다. 안전보건실은 전사적인 안전·보건 정책의 수립과 이행을 총괄한다. 또 기존 김규덕 안전환경실장을 최고안전책임자(CSO)로 선임하고 독립적인 인사·예산·평가 권한을 부여했다. CSO 전진 배치와 함께 안전을 전담 연구하는 조직인 '건설안전연구소'와 '안전보건 자문위원회'도 신설했다.
롯데건설도 기존 안전보건부문 조직을 하석주 대표이사 직속의 '안전보건경영실'로 격상하고 안전보건운영팀, 예방진단팀, 교육훈련팀 등 3개팀으로 확대 개편했다. 또 안전보건 의사결정기구인 안전보건임원 협의회와 안전상황실 태스크포스도 운영하기로 했다. 호반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호반건설도 올해 처음으로 CSO 자리를 신설해 허옥 대표이사 부사장에게 맡겼다.
재계에선 기업들이 앞다퉈 안전 전담 조직을 설치하는 이유를 두고 내년 1월 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CSO직을 신설한다고 사고 발생 책임을 모두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고용노동부가 배포한 중대산업재해 관련 해설서에 따르면, 안전 담당 임원이 별도로 있어도 '최종 결정권'이 없는 이상 기업 대표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 해설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자, 즉 경영을 대표하는 자의 안전 및 보건에 관한 의무와 역할을 규정한 것"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와 책임의 귀속 주체는 원칙적으로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인물"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조직 재편 등을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의 1호 사례가 되는 것 만큼은 피하자는 분위기다. 재계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규정하는 의무 주체와 처벌이 모호해 오너들도 불안해하고 있다"며 "최고안전책임자(CSO) 자리를 신설하는 것도 대표가 처벌 받을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