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이 SK실트론 지분 인수 과정에서 회사의 사업 기회를 가로챘다는 의혹은 공정거래위원회가 SK㈜와 최태원 회장에 각각 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일단락 됐다. 자칫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는 검찰 고발은 피했다는 점에서 최 회장은 법률 리스크가 해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SK㈜는 과징금 금액과 관계없이 위법성이 있다는 결론이 나온 데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재계에서는 ‘사업기회 유용’은 상법과 공정거래법으로 이중 규제를 받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공정위는 SK㈜의 특수관계인(최 회장)에 대한 사업기회 제공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SK㈜, 최 회장에 각각 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8억원의 과징금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제도상 구체적 위반금액을 산출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정액 과징금을 부과할 수밖에 없다”며 “위반행위의 중대성에 따라 과징금이 산정되는데, 중대성이 약한 위반행위라는 판단에 따라 (최대 한도인) 20억원의 40%선에서 부과됐다”고 설명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5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 도착해 'SK실트론 사익편취 의혹' 사건 전원회의가 열리는 심판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최 회장 입장에서는 검찰 고발을 피하게 돼 최악의 상황은 면하게 됐다. 검찰에 고발되면 경제적, 행정적 제재에 이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고 총수가 장기간 수사를 받아야 하는 만큼 그룹 차원에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SK로서는 검찰 고발이 제외된 것만으로도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 공정위는 “최 회장이 SK㈜에 사업 기회를 제공하도록 지시했다는 사실을 직접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는 점, 명확한 법 위반 인식을 갖고 행해진 행위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검찰 고발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2003년에 부당 내부거래, SK글로벌 분식회계 등 배임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고, 2013년에도 수백억원대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도 2년 7개월간 수감생활을 한 바 있다. 최 회장은 지난 15일 공정위 전원회의에 직접 출석해 “실트론 지분을 인수했을 때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힘든 수형의 경험을 겪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소위 국정농단 사건에 관여됐는지에 대해서 오랜 시간 수사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며 “저 스스로 아주 조심하던 때”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SK㈜는 공정위가 SK㈜와 최 회장의 행위를 위법으로 결론내렸다는 데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SK㈜는 “그동안 SK실트론 사건에 대해 충실하게 소명했음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제재 결정이 내려진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의결서를 받는대로 세부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필요한 조치들을 강구할 방침”이라며 법적 대응을 시사하기도 했다. 공정위의 시정명령 및 과징금 결정은 1심 재판과 같은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SK㈜가 법적 대응을 하려면 고등법원에 시정명령·과징금 취소 처분 소송을 내야 한다.

경영계 역시 최 회장의 SK실트론 인수가 위법으로 결론난 데 대해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은 “총수의 계열사 지분 투자 자체는 경영 판단의 영역인만큼, 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다”며 “잘못이 있다고 생각되면 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할 주체는 경쟁당국이 아닌 주주”라고 말했다. 주주 입장에서 회사의 추가 지분 취득이 이익에 도움이 됐을 것으로 판단된다면 집단 소송 등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그는 “(사업기회 유용은) 전형적인 상법상 규제인데, 한국만 특이하게 공정거래법에 들어와 있다”며 “주주간 이해충돌 문제를 정부가 나서 공정거래법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 역시 지난 21일 자유기업원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대주주의 지분 취득은 사업 기회가 아닌 기업가치 제고 및 책임경영 의지의 표현”이라며 “사업기회 제공 문제는 전형적인 회사법(상법의 일부) 문제인 만큼 공정거래법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