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003490)아시아나항공(020560)의 기업결합,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등 KDB산업은행(산은)이 주도했던 주요 구조조정이 독과점 우려에 따른 국내외 기업결합 심사 지연이라는 암초를 만나 수년째 표류하고 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빅딜(Big Deal)' 방식의 구조조정을 선택했으나 해외 경쟁당국의 승인 가능성을 너무 낙관적으로 본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1, 2위 항공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은 1년 넘게 제자리걸음 중이다. 지난해 11월 산은이 구조조정 방침을 밝힌 후 대한항공은 올해 1월 9개 필수신고국가 경쟁당국에 기업결합을 신고했지만,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를 비롯해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중국 등 5개국이 아직 결론을 내지 않았다. 영국·호주·싱가포르 등 임의신고국가 3곳도 결론을 내지 않아 국내외 승인은 해를 넘기게 됐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조선DB

공정위와 해외당국이 우려하는 점은 양사의 국제선 노선이 67개나 중복되는 만큼 합병 시 독점으로 인해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운수권과 슬롯에 제한을 두는 조건부 승인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 방안 역시 반발에 부딪혔다. 항공업계에서는 점유율이 높은 운수권 및 슬롯 회수분이 국내 저가항공사(LCC)가 아닌 외항사에 돌아가 국가 항공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현대중공업그룹(한국조선해양)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는 빅딜도 무산 위기에 처했다. 최근 유럽연합(EU)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에서 독과점이 발생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기업은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1·2위를 다투는 조선사로, 두 회사가 합병하면 LNG선 시장점유율은 약 70%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건은 국내외 기업결합 심사가 지연되면서 3년 가까이 표류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 간 결합을 심사하는 EU 집행위는 2019년 12월 기업결합 심사에 착수했지만, 코로나19 사태를 이유로 심사를 세 차례나 연기했다가 지난달 말 재개했다. 심사 대상 국가 6개국 중 승인을 해준 국가는 절반에 그쳐, EU가 반대하거나 'LNG선 사업 일부 매각'이라는 조건부 승인을 내린다면 무산 가능성도 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산업은행 제공

기업간 결합심사가 늦어지면서 당초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봤던 산은의 입장도 난처해졌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건과 관련해선 공정위를 겨냥해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교각살우(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의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재촉했다. "6개월 만에 끝내겠다"던 현대중공업그룹·대우조선해양 건에 대해선 "(인수 무산에 대비해) 현재 플랜D까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해외 경쟁당국의 심사 결과를 너무 낙관적으로 예상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두 회사의 합병으로 시장 점유율이 크게 높아지면 합병을 불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U는 캐나다 1위 항공사인 에어캐나다가 캐나다 3위 항공사인 에어트랜셋을 인수하는 계약에도 반대했다. 캐나다 항공사의 합병이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EU는 독과점 가능성을 낮출 수 있는 조치를 요구했으나 에어캐나다는 EU가 합병을 불허할 것으로 예상해 합병 계획을 자진 철회했다.

전문가들은 이들 기업의 빅딜이 늦어지거나 무산되면 산업 경쟁력이 약해질 것으로 우려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독자 생존이 어려운 기업을 동종업계의 다른 대기업이 인수하게 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게 하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면서 "코로나19, 글로벌 경쟁업체의 이해관계 등으로 기업결합 과정이 지체되면서 비용 부담뿐 아니라 산업구조 혁신과 효율성 제고 역시 미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3분기까지 1조2393억원의 누적 영업손실을 냈다. 아시아나항공은 일시적인 항공화물 시장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3분기말 별도 기준 부채비율이 3668.3%에 달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갈수록 빠르게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대비할 수 있도록 기업 간 결합 심사가 빨리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