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해운사 머스크(Maersk)는 최근 메탄올로 가는 컨테이너선의 모형 사진과 영상을 공개했다. 지난 8월 현대중공업에 발주한 1만6000TEU(1TUE=20피트 컨테이너)급 선박으로 2024년에 인도받을 예정이다. 머스크는 메탄올 컨테이너선 8척을 도입해 기존 선박을 대체하면 연간 탄소 배출량을 100만톤(t)가량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바다에도 탄소중립 바람이 불면서 전 세계 조선·해운업계가 디젤 연료를 대체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아직 차세대 연료마다 장단점이 뚜렷해 연구·개발 경쟁은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국가 경쟁력을 잃지 않으려면 정부 차원의 협력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9일 조선·해운업계에 따르면 국제해사기구(IMO)는 2050년까지 2008년보다 해상 탄소배출량을 50% 줄이는 것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도 국내 해운업 탄소배출량을 2018년 101만9000t에서 2050년 30만7000t으로 70% 줄이겠다는 로드맵을 세웠다. 디젤 연료를 어떤 저탄소·무탄소 연료로 전환할 지가 핵심이다.
당장 대세는 액화천연가스(LNG)다. LNG는 디젤보다 탄소 배출량을 약 30% 줄일 수 있다. 영국의 조선·해운 시황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발주된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가운데 48%(이중연료·전환 포함)가 연료로 LNG를 채택했다. 같은 기간 1만2000TEU급 이상 대형 컨테이너선의 37%도 LNG 추진선이었다. 국내 조선업계가 올해 LNG선 10척 가운데 9척을 수주할 만큼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하지만 LNG가 화석 연료인 만큼 탄소 배출이 적지 않아 2050년 탄소감축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렵다. 최근 천연가스 가격이 널뛰는 점도 부담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00만BTU(열량 단위)당 6~10달러로 움직이던 천연가스 가격은 올해 들어 최대 30달러 넘게 치솟는 등 가격 안정성을 잃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LNG는 차세대 연료가 나올 때까지 활용하는 중간 기술에 가깝다"며 "LNG 다음으로 어떤 연료가 시장을 주도할 지를 두고 다양한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무탄소 연료인 수소(H₂)가 장기적으로는 대안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역시 가격이 문제다. 연료 효율을 고려할 때 수소 연료전지를 선박에 적용해야 하는데 현재 기준으로는 상용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선박에 적용할 수 있는 연료전지의 가격은 ㎾당 2000달러 수준이다. 약 35㎿의 엔진이 장착되는 VLCC에 적용하면 7000만달러(약 830억원), 75㎿의 엔진이 실리는 2만3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에는 1억5000만달러(약 1780억원)가 든다. 현재 이들 선박 가격에 80% 수준이다. 장거리 연속 운항하는 선박의 특성상 연료전지를 2~3년마다 교체해야 할 수 있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다.
소형 원자로(SMR) 추진선도 개발 중이다. 탄소 배출이 전혀 없고 선박 수명이 다할 때까지 연료를 재충전하지 않아도 된다. 삼성중공업(010140)은 한국원자력연구원과, 대우조선해양은 한국전력기술과 손잡고 관련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다만 SMR을 군용 선박이 아닌 상선에 적용한 적이 없어 실제로 각국 항만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선박을 폐선하는 과정에서 사용후핵연료 처리 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가장 앞서고 있는 것은 암모니아다. 암모니아(NH₃)는 탄소를 함유하고 있지 않고, 10bar의 기압에서 영하 34도를 유지하면 돼 저장과 운송조건이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암모니아 생산·공급이 이뤄지고 있어 추가 인프라 투자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모두 암모니아 추진선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는 암모니아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있어 재생에너지 기반의 그린 암모니아를 생산해야 한다. 포스코(POSCO)와 롯데정밀화학(004000), 현대중공업, HMM 등이 '그린 암모니아 컨소시엄'을 꾸리기도 했다.
차세대 연료 모두 단점을 보완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 조선업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은 정부가 나서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중국은 '제조 2025′ 프로젝트에 기반해 조선업 지원에 나섰고, 일본은 국토교통성 주도로 '해사클러스터'를 꾸려 연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도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정부 차원의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종서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국가적으로 움직이는 경쟁국과 달리 개별 기업의 한정된 경험과 능력만으로 대응하면 시장에서의 입지가 추락할 수 있다"며 "조선사뿐만 아니라 기자재업체나 선사, 화학·에너지 등 기업들이 역량을 공유하고 국가가 이를 뒷받침하는 체계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