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예상되는 현대차(005380)를 마지막으로 삼성, SK(034730), LG(003550) 등 국내 주요 그룹의 내년도 정기인사가 마무리되는 가운데 나이와 경력보다 성과가 좋은 인재를 중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삼성이 '30대 임원, 40대 최고경영자(CEO)'가 나올 수 있게 인사 제도를 바꾸면서 국내에도 능력과 성과 중심의 실리콘밸리식 인사 제도가 확산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연말 인사를 통해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정체성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정의선 시대가 개막하는 과정에서 가교 역할을 했던 외국인 사장들이 퇴임하고, 전기차·자율주행차·UAM(도심항공교통) 등 미래 모빌리티 분야 전문성을 가진 인사를 대거 요직에 올려 과감한 변화를 선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선 연구개발(R&D)과 디자인 분야 수장을 맡고 있는 알버트 비어만 연구개발본부장(사장)과 피터 슈라이어 디자인경영담당 사장이 퇴임할 예정이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영입한 두 외국인 사장은 현대차, 제네시스, 기아(000270)의 품질과 디자인을 한 단계 끌어올려 현대차그룹의 브랜드 가치를 지금 수준으로 높인 주역으로 평가된다.
세계적인 완성차 브랜드를 이끌었던 경험을 기반으로 현대차그룹에 혁신의 씨앗을 심어준 이들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현대차는 본격적으로 미래 모빌리티 사업을 실행하는 조직을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의선 회장이 회장직에 오른 이후 처음 단행한 지난해 인사가 그룹을 새로운 체계로 전환하는 출발점이었다면, 올해에는 미래 사업을 주도할 전문 인력에 힘을 실어주는 인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최측근으로 현대차 노사 문제를 담당해온 윤여철 부회장이 퇴임하고, 이원희, 하헌태, 이광국 사장도 물러날 가능성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은 현대차를 IT 기업처럼 만들기 위해 일하고 생각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자고 강조해 왔다"며 "그 일환으로 임원진 상당수가 교체되고, 전문성을 가진 젊은 임원이 대거 발탁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퇴임 임원이 25~30%에 이를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신사업을 발굴하고 확대하기 위해 성과에 직접 보상하는 문화도 확대하고 있다. 현대차는 최근 성과가 좋은 사무직·연구직 간부 직원에게 특별 성과급을 500만원씩 지급했다. 현대차는 앞으로도 차등 성과급을 지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인사를 단행한 국내 주요 그룹도 실적과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SK그룹은 SK하이닉스(000660)에 글로벌 비즈니스와 미래 성장전략을 담당하는 사업총괄을 신설하고, 노종원(46) 사장을 선임했다. 노 사장은 2016년 임원에 오른 지 5년 만에 사장까지 승진했다. 역대 최연소 CEO다. 그를 비롯해 SK그룹 신규 임원 중 30~40대가 절반이 넘는다.
최근 3~4년 동안 가장 큰 폭의 임원 승진 인사를 단행한 LG그룹도 젊은 임원의 약진이 돋보였다. 신규 승진 임원 중 40대가 62%에 이르고, LG전자(066570)에는 1980년생 상무도 나왔다. 한화(000880)그룹은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무 승진자를 모두 1970년대생으로 발탁했고, 코오롱(002020)그룹 역시 40대 신임 상무보가 전체 21명 중 18명(약 85%)에 달한다.
재계에서는 젊은 세대를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인사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의 구글·아마존처럼 연공서열보다는 현재의 성과와 미래의 가능성을 따져 보상해주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조직문화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반발도 있다. 삼성전자 노조는 이번 인사 제도 개편안이 무한경쟁과 불공정한 문화를 강화한다며 도입을 반대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경영 환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고 주요 기업의 총수들도 젊은 편이라 도전과 혁신에 초점을 맞추는 인사를 택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