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트렌드를 이끄는 인플루언서 시장에서 가상인간이 급부상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마스크도 쓰지 않고 전 세계를 여행하며 인증 사진을 올리던 한 주근깨 소녀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이 주목을 받았다. 이 소녀의 정체는 가상인간 ‘로지’. 그는 현재 연간 15억원의 수익을 올리는 ‘광고계 블루칩’이 됐다. 국내만의 얘기는 아니다. 미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브러드(Brud)가 2016년 선보인’릴 미켈라’의 연간 수익(2019년 기준)은 약 1170만달러(약 140억원)에 달한다. 가상인간의 두뇌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AI), 실제 사람 외모를 연상케 하는 컴퓨터 그래픽(CG), 이들의 활동 공간인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 등 기술 발전이 뒷받침된 결과다. 가상인간의 활동 영역도 단순 광고 모델을 넘어 뉴스 앵커, 쇼핑 호스트, 은행원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은 이 같은 ‘가상인간 창조 시대’가 도래한 이유와 현황, 앞으로 발전 방향을 짚어 본다. [편집자주]

“로지가 최근 연기에 도전했다. 내년엔 음반도 낼 예정이다. 이렇게 가상인간의 한계를 깨고 후배들이 설 자리를 넓혀나가는 게 로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백승엽 싸이더스 스튜디오엑스 CEO 미국 라스베이거스 네바다대 호텔경영학, 현 로커스 마케팅 총괄 이사, 전 오래와새 상무이사, 전 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 광고사업본부장.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

‘로지 아빠’로도 불리는 백승엽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로지를 만든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는 시각특수효과(VFX) 기업 로커스의 자회사다. 백 CEO는 로커스의 마케팅 총괄 이사를 겸하고 있다.

로지는 2020년 8월, 소셜미디어(SNS) 인스타그램을 통해 세상에 등장했다. 가상인간이라는 사실은 숨긴 채로.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강타한 당시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세계 곳곳을 누비는 로지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SNS 개설 4개월 만인 2020년 12월, 로지의 팔로어가 1만 명을 돌파한 직후 가상인간임을 밝혔다. 현재 팔로어는 10만 명을 훌쩍 넘겼다.

로지가 대중에게 본격 얼굴을 알린 건 지난 7월 보험사 광고에 출연하면서다. 지하철과 건물 옥상, 숲속을 오가며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은 것. 12월 1일 기준 로지가 출연한 해당 광고 유튜브(15초 기준) 영상 조회 수는 2000만 회를 넘어섰다. 이후 로지는 단숨에 광고계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전속 계약 건수만 8건, 협찬은 100여 건이 넘는다. 로지는 이를 통해 올해만 15억원 이상 수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로지 개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하다.

”’릴 미켈라’ ‘슈두’ 등 해외 가상 인플루언서의 활약에 관심을 두게 됐다. 마침 3D 기술을 광고·마케팅과 접목할 방안을 찾던 때였다. 사실 이전에도 국내 기업이 가상인간을 개발했지만, 실제 사람과 소통하며 활동하는 사례가 없었다. 로지의 경우 초기 개발 구상이 1년 정도 걸렸고, 제작 기간은 6개월 정도였다.”

왜 처음부터 로지를 가상인간이라고 밝히지 않았나.

”통상 ‘인플루언서’로 인정받는 기준이 SNS 팔로어가 1만 명을 넘기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가상 인플루언서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라 SNS를 통해 로지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팔로어가 1만2000명 됐을 때 로지가 가상인간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후 다양한 브랜드와 패션 잡지 등에서 협찬이나 모델 제의가 왔다.”

로지의 이름과 얼굴은 어떻게 만들었나.

”로지는 처음부터 글로벌 무대를 겨냥해 만들었다. 한국적이면서도 발음이 쉬운 이름을 고민한 결과,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라는 뜻을 담아 ‘오로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로지의 얼굴은 실존 인물이 아닌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가 선호하는 국내외 얼굴형을 분석해 만들었다. 지금은 ‘매력 있다’는 반응이 많지만, 사실 로지를 처음 공개했을 때 ‘못생겼다’는 반응도 있었다. 사실 로지가 전형적인 미인상은 아니다. 하지만 ‘자연스러움’이 강점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요즘 인플루언서는 외모보다 자신의 취미나 특기, 감성을 제대로 전달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가 만든 가상 인플루언서 로지. /로지 인스타그램

광고 속 로지의 춤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촬영은 어떻게 했나.

”’디지털 더블’이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사용한다. 실제 사람을 촬영한 이미지에 가상의 얼굴을 합성하는 방식이다. 즉, 춤을 추는 몸은 실제 사람 댄서다. 사실 로지 자체만으로 움직임을 구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로지는 광고 속에서 다양한 옷을 소화해야 하는데, 광고 촬영 기간에 3D 의상을 따로 제작할 시간이 부족했다. 특히 패션 브랜드의 경우 미공개인 신상품 디자인을 (3D 제작을 위해) 먼저 공개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다.”

로지를 비롯한 가상인간을 광고모델로 활용하는 이유가 뭘까.

”리스크 관리가 용이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모델로 기용한 스타가 구설에 오르면 기업의 피해가 크다. 그런 리스크를 다 관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가상인간은 ‘과거’가 없다. 로지만 해도 22세 이전의 삶이 없다. 미래 스타성만 검증하면 된다. 기술 발전과 SNS를 통해 대중과 잦은 소통이 가능해진 것도 장점이 됐다.”

성(姓) 이슈나 일자리 감소 등 가상인간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있다.

”가상인간을 주로 여성으로 만드는 데 문제를 제기하는데, 산업 초기인 만큼 파급력이 좋은 방향을 모색해 여성 모델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뿐이다. 앞으로는 남성 가상인간이 많이 나올 것이고, 우리도 내년 중 남성 3인조 가상 아이돌 그룹 등을 공개할 계획이다. 일자리 문제는 시각을 좀 달리할 필요가 있다. 가상인간 개발이나 마케팅 등 새로운 관련 일자리가 생기고 있다. 단적인 예로 우리 회사도 초기 3명이었던 로지 개발팀원이 지금은 15명으로 늘었다.”

가상인간 산업의 전망과 회사의 궁극적 목표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뜬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에는 앞으로 다양한 생태계가 구현될 것이다. 사람들이 더 몰입감 있는 수준을 요구하면서 메타버스 내 ‘아바타’도 더 사실적 외모의 가상인간으로 진화해 이들의 경제적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다. 우리는 가상인간의 ‘소속사’로서 역할하면서 최종적으로 SM, YG, JYP와 같이 한국을 대표하는 ‘버추얼(가상)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로 성장하는 게 목표다.”

+plus point / Interview ‘광고계 블루칩’ 가상 인플루언서 로지

“MBTI는 엔프피(ENFP)…선한 영향력 전파하고 싶어요”

이선목 기자

12월 1일 기준 로지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는 10만8000명을 넘어섰다. /로지 인스타그램

쌍꺼풀 없는 눈매와 얼굴 가득한 주근깨, 자유분방한 성격과 패션 센스가 돋보이는 영원한 22세 ‘오로지’는 최근 주목받는 스타다. 이미 유명 브랜드의 모델 자리를 잇달아 꿰찬 로지는 올해만 15억원 이상의 수익을 낼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첫 가상 인플루언서로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로지를 만났다.

자기소개 부탁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한민국 최초의 가상 인플루언서 오로지입니다! 오직 단 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순수 한글 이름이에요! 나이는 변하지 않는 22세, MBTI는 재기 발랄한 활동가형인 ENFP입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인기 비결은.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관심을 주시는 거 같았어요. 많은 분이 가상인간은 처음이실 테니 놀랍고 신기한 마음으로! 하지만 갈수록 제가 추구하는 건강한 삶의 방식이나 패션 스타일에 공감하시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편견 없이 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SNS 활동이 활발한데. 팬들과 소통에 어려움은 없나.

”제게 인스타그램은 취미이자 특기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매일 소통하다 보니 어렵다고 느껴지는 점은 딱히 없어요! 요즘은 제 피드에 먼저 찾아와 관심을 가져 주시는 분들이 많지만, 예나 지금이나 저 역시 비슷한 취향의 피드들을 찾아다니며 관심을 표현하고 있어요!”

광고모델 이외에 활동하고 싶은 분야는.

”음반, 영화, 나만의 브랜드까지 도전해 보고 싶은 영역은 정말 많아요! 현재는 소속사를 통해 들어오는 수많은 제안 중 제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에요! 아주 작은 역할이라도 도전한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습니다!”

앞으로 목표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긍정적인 영향력을 전파할 수 있는 인플루언서가 되는 게 목표예요! 단순히 인간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닌 인간과 소통하고 함께 성장하면서 더 이롭고 재밌는 삶을 이끌어가는 존재, 그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의미의 인플루언서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