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운이 짙어지면서 유럽의 에너지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유럽은 전체 천연가스 소비량의 40%가량을 러시아산에 의존하고 있는데, 러시아의 군사적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 등 일부 서방국가가 독일과 러시아를 잇는 가스관 가동을 지연시키면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했다. 한국 역시 최근 원전과 석탄화력발전 대신 값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늘리면서 발전 비용이 크게 늘었다. 유럽의 에너지대란이 길어지면 한국의 전기요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5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한국전력(015760)이 전국 발전 기업에서 사들이는 전력시장 도매가격(SMP)은 지난 14일 킬로와트시(kWh)당 평균 147.06원을 기록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SMP는 60~70원대에 불과했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은 사이에 배 이상 급등했다. 지난 1일엔 148.67원까지 치솟았는데, 이는 2014년 7월 18일(148.85원) 이후 약 7년 4개월여 만에 최고치다. SMP가 상승하면 한전의 전력구입비가 늘어나고, 이는 한전의 재무 부담으로 이어진다.

러시아에 위치한 노드스트림2 파이프라인./연합뉴스

SMP는 시간별로 책정되는 전력시장 도매가격으로, 전력 생산에 참여한 발전기 중 발전 가격이 가장 높은 발전기의 연료비에 따라 결정된다. 지난 11월 SMP를 결정한 연료원을 보면, 총 720시간 중 LNG가 664시간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보통 가격이 저렴한 연료 순으로 발전기를 가동하는데, 가장 비싼 LNG가 대부분의 SMP를 결정했다는 것은 LNG까지 가동해야 전력 수요가 매시간 충족됐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SMP의 흐름은 LNG 가격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LNG의 한국 수입가격은 11월 기준 톤(t)당 799.3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56.1%(487.3달러) 상승한 동시에 최근 1년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격이 오르고 있지만 LNG 발전을 줄이긴 어렵다. 탈원전 정책 때문에 원전 발전량은 줄어드는 추세이고,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 발전 공기업이 운영하는 전체 석탄발전기 53기 중 8~16기의 가동이 중단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는 겨울철엔 발전량이 적어 전력 수급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LNG 가격이 앞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병력 배치를 늘리는 등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이에 미국은 러시아와 독일을 직접 연결하는 노드스트림2 가스관의 운영 승인을 막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섰다. 러시아가 노드스트림2를 정치적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이 가스관이 운영되면 유럽 천연가스 수요의 25%에 달하는 550억㎥의 천연가스가 공급될 수 있다. 이미 국제유가 상승과 공급 부족 등으로 가격이 오른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노드스트림2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공급 불안 우려로 사상 최고치 수준으로 치솟았다. 유럽은 전체 천연가스 소비량 중 43%를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성규 한국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국제협력센터 해외정보분석팀장은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노드스트림-1)이 있는데, 위기가 지속될 경우 이 물량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현재 전 세계가 에너지 전환 때문에 불확실성 요인이 많은 가운데 전력 수요가 높아지는 겨울철이 겹쳤고, 여기에 공급까지 불안해지니 천연가스 가격이 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단기간에 상황이 해결된다면 유럽에만 영향이 국한되겠지만, 장기화되면 국제 가스가격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제 LNG 가격이 상승해 국내 SMP 가격이 뛰면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올해부터 연료비를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해 4분기에 전기요금을 kWh당 3원 올렸는데, 최근 상승한 연료비를 고려하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SMP가 급등했지만 소비자가 부담하는 전기요금은 좀처럼 인상되지 않고 있다"며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으면 결국 이는 한전의 부채로 쌓이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