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트렌드를 이끄는 인플루언서 시장에서 가상인간이 급부상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마스크도 쓰지 않고 전 세계를 여행하며 인증 사진을 올리던 한 주근깨 소녀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이 주목을 받았다. 이 소녀의 정체는 가상인간 ‘로지’. 그는 현재 연간 15억원의 수익을 올리는 ‘광고계 블루칩’이 됐다. 국내만의 얘기는 아니다. 미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브러드(Brud)가 2016년 선보인’릴 미켈라’의 연간 수익(2019년 기준)은 약 1170만달러(약 140억원)에 달한다. 가상인간의 두뇌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AI), 실제 사람 외모를 연상케 하는 컴퓨터 그래픽(CG), 이들의 활동 공간인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 등 기술 발전이 뒷받침된 결과다. 가상인간의 활동 영역도 단순 광고 모델을 넘어 뉴스 앵커, 쇼핑 호스트, 은행원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은 이 같은 ‘가상인간 창조 시대’가 도래한 이유와 현황, 앞으로 발전 방향을 짚어 본다. [편집자주]
“가상인간의 궁극적인 미래는 로봇이 될 겁니다. 육체 없이 가상공간에서만 존재했던 인공지능(AI) 기반의 가상인간이 로봇에 들어가고, 현실세계에서 실제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미래가 열릴 겁니다.”
AI 서비스 업체인 마인즈랩의 유태준 대표는 11월 26일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이같이 예측했다. 마인즈랩은 최근 신한은행에 AI 가상 은행원 기능이 탑재된 데스크형 스마트 기기인 ‘디지털 데스크’를 공급해 주목을 받은 회사다. 현재 서울 서소문점·여의도중앙점·홍제동점 등 수도권 69개 지점에 마인즈랩의 디지털 데스크 78개가 배치됐다. 고객이 상담 창구에 앉으면 데스크 화면에 AI 가상 은행원이 나타나 계좌 개설이나 이체·송금, 금융상품 안내 등 은행 업무를 도와준다.
기존 가상인간 인플루언서의 경우 준비된 스크립트를 읽어주는 일방향 대화에 그쳤다면, AI 가상 은행원은 고객과 실시간으로 쌍방향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24시간 방송이 가능한 AI 가상 기상캐스터도 이 회사의 대표적인 서비스다. 여수MBC는 지난 9월부터 마인즈랩의 AI 가상 기상캐스터를 도입, 날씨 방송을 진행 중이다. 마인즈랩의 AI 가상 기상캐스터는 YTN의 기상캐스터 유승민씨를 모델링해서 만들었다. 실제 인물을 토대로 만들어 낸 일종의 아바타형 가상인간이다.
2014년 마인즈랩이 설립될 당시에는 빅데이터 사업 회사였다. 삼일회계법인에서 20년간 일한 공인회계사 출신인 유 대표가 2015년 회사를 인수한 이후, 회사의 사업 방향이 AI 개발 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빅데이터가 단순 분석 대상에서, AI 학습 자원이라는 개념으로 의미가 확장되면서 자체적인 AI 개발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마인즈랩은 지금까지 40개의 자체 AI 엔진을 개발했고, 지난 3월에는 AI 가상인간인 ‘M1′ 개발에 성공했다. M1은 음성·시각·언어 기술의 총 집합체로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눈으로 본 것을 이해하고, 실시간 음성 대화까지 가능하다. 최근 신한은행에 공급된 AI 가상 은행원도 M1이 적용된 것이다. 유 대표는 가상인간의 미래를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와 AI 기술 발전에 달렸다고 전망했다. 그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메타버스와 AI의 결합으로 가상인간 산업은 더욱 확장될 것”이라며 “미래에 AI가 고도화되면 AI 가상인간이 탑재된 로봇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가상인간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나.
”우리는 가상인간 대신 인공인간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최근 가상인간으로 유명세를 떨친 가상 인플루언서와 구분하기 위해서다. 광고모델 등으로 활동 중인 가상 인플루언서는 3차원(3D) 그래픽 기술의 발전으로 나타난 이미지 변환기술로 구현된 것이다. 가상 인플루언서들이 포즈를 취하거나 춤추는 영상은 실제 사람이 몸에 센서를 달고 영상을 찍은 뒤, 이미지 변환기술을 적용해 가상 인플루언서의 모습을 입히는 것이다. 가상 인플루언서는 AI로 운영되지는 않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대화를 하거나 스스로 움직일 수는 없다.”
마인즈랩의 가상인간은 무엇이 다른가.
”우리 회사는 AI로 운영되는 가상(인공)인간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상 인플루언서보다 기술적으로 발전된 형태의 서비스다. 우리가 만드는 인공인간은 3D 그래픽 기술에 인공지능 기술이 접목된 결과물이다. 사람 음성을 95% 이상 이해할 수 있게 훈련됐고, 음성 인식 속도는 0.5초 이내로 빠르기 때문에 끊김 없이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우리는 주로 실제 인물을 모델로 아바타형 인공인간을 만들고 있는데, 최근에는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하지 않고 인공인간을 제작하기도 했다.”
가상인간이 최근 부상한 이유가 있나.
”때가 무르익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최근 들어 가상인간을 구현하는 3D 그래픽 기술이나 AI 기술이 정교화됐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도 올해 3월에 AI 기술을 총집합시켜 가상인간을 만들어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가상인간을 만들 기술은 있었지만 기존에 있던 기술들이 정교해지고, 이를 종합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이다.”
가상인간 산업이 발전하려면.
”물론, 가상인간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메타버스 세계 구축이 빨라질수록 가상인간 산업도 빠르게 확장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상인간이 사람과 비슷한 대응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선 AI 기술 발전이 선행돼야 한다. 현재 가상 인플루언서가 인기는 있지만,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대화를 하거나 상호작용을 하는 건 불가하다. 다양한 서비스 산업 현장에 적용할 수도 없다. 결국 가상인간 산업 발전은 AI에 달려있다고 봐야 한다.”
광고모델 외에 가상인간 적용 가능 사업은.
”대표적인 예로 머지않아 휴대전화에도 가상인간 비서가 들어갈 수 있다. 지금은 음성인식 AI 비서가 휴대전화에 들어가 있는데, AI 가상인간 비서가 탑재되면 기존의 청각 정보뿐 아니라, 시각 정보를 인식한 상태로 사용자와 대화할 수 있다. 인간은 대화할 때 서로의 표정을 읽고 행간의 의미를 해석하는데, 휴대전화에 AI 가상인간 비서가 들어가면 AI와 사용자가 서로의 표정을 보면서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엔터테인먼트로도 활용 가능하다. 예를 들어, 방탄소년단(BTS) 같은 인기 연예인들을 모델링해서 가상인간을 만들 수도 있다. 이 밖에 가전 대리점이나 전시장에서 안내를 가상인간이 대신할 수 있고, 행사장에서 사회도 가상인간이 대신 봐줄 수 있다. 이런 것들은 현재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이기도 하다. 고객센터 상담 업무 같은 감정 노동도 AI 가상인간으로 대체 가능하다.”
미래에는 가상인간이 감정도 가질 수 있나.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인간의 뇌 시냅스와 뉴런을 모방해 낼 정도로 AI가 고도화된다면 AI가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내고, 심지어 감정을 가질 수도 있다고 본다. 가상인간이 실제 인간에 가까워지고, 가상인간을 로봇에 넣는다면 메타버스 세계가 아니라, 현실세계에서도 가상인간과 인간이 어울려 생활하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 회사가 주목하는 것도 로봇이다. AI에 기반한 가상인간을 로봇에 넣어 생활에 쓰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가상인간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할까.
”미래에 AI 기술이 고도로 발달해서 가상인간이 실제 인간과 유사할 정도의 모습을 갖게 된다면 모를까 지금 수준의 가상인간은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기 어렵다. AI 가상인간이 로봇에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먼 미래의 일이다. 1인 가구가 늘고, 인구가 갈수록 감소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가상인간이나 가상인간 로봇이 미래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 목표는.
”AI 기반 가상인간 사업은 새로운 성장 시장이다. 특히 우리 회사는 로봇에 AI 가상인간을 입히는 쪽으로도 사업을 발전시킬 계획이다. 2023년까지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기업)으로 도약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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