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의 SK실트론 지분 인수가 회사의 사업 기회를 부당하게 가로챈 것인지를 판단하는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가 오는 15일 열린다. 공정위 제재가 확정되면 회사가 총수의 이익을 위해 사업 기회를 제공한 데 대한 첫 번째 사례가 된다. 최 회장이 주요 그룹 총수로선 이례적으로 직접 출석 의사를 밝힌 가운데, 사실상 대기업 총수의 투자 기준이 될 이번 판단에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4일 공정위와 재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오는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최 회장의 SK실트론 사익 편취 의혹 사건과 관련한 전원회의를 개최한다. 이번 전원회의에는 사건의 당사자인 최 회장이 직접 출석한다. 대기업 총수가 전원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전원회의는 민사재판처럼 당사자가 꼭 나올 필요는 없다. 공정위는 최 회장의 요청에 따라 기업 비밀과 관련한 일부 심사 과정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워싱턴특파원 공동취재단

사건은 2017년 SK(034730)㈜가 반도체 웨이퍼 생산 기업인 LG실트론(현 SK실트론) 지분을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SK㈜는 그해 1월 LG실트론 지분 51%를 LG(003550)㈜로부터 주당 1만8138원에 인수했고, 3개월 뒤에 잔여지분 49% 중 KTB PE가 보유하고 있던 19.6%를 주당 1만2871원에 추가로 확보했다. 추가 매입분의 가격이 낮아진 것은 경영권 프리미엄이 빠졌기 때문이다. 우리은행 등 채권단이 갖고 있던 나머지 29.4%는 8월에 최 회장이 공개 입찰을 거쳐 같은 가격(주당 1만2871원)에 매입했다.

2017년 11월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는 최 회장의 지분 매입 과정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공정위에 조사를 요청했다. 당시 경제개혁연대는 "SK㈜가 49% 잔여지분을 취득할 때 당초 매입가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이 제외돼 30%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는데도 잔여 지분을 전부 취득하지 않고 이 중 19.6%만 취득했다"며 "나머지 29.4%는 최 회장이 취득했는데, 이는 상법과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한 회사 기회 유용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회사가 최 회장에게 향후 상당한 이득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SK실트론 지분 인수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공정위는 한달 뒤인 12월 조사에 착수했고, 현재 SK㈜와 최 회장의 행위에 위법성이 인정된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쟁점은 SK㈜가 향후 막대한 수익 창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총수의 사익을 위해 사업 기회를 제공한 것인지 여부다. 최 회장이 확보한 지분을 통해 배당 수익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 향후 SK실트론의 실적 향상에 따른 지분 가치 상승도 충분히 예견 가능했다고 공정위는 보고 있다. 실제 SK실트론이 SK㈜에 인수된 다음 해인 2018년에 매출액(1조3462억원)과 영업이익(3804억원)이 각각 전년 동기 대비 44%, 187%씩 상승했다.

SK㈜ 측은 주요 사안을 결정할 때 필요한 주총 특별결의요건(지분 3분의 2 이상)을 충족한 상태였던 만큼 잔여 지분취득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SK㈜는 2017년 4월 지분 19.6%를 추가 매입할 때 총수익스와프(TRS) 방식을 활용했는데, 이는 증권사가 투자자에게 수수료를 받고 주식을 대신 매수해주는 거래다.

이미 지분 51%를 인수하면서 6200억원에 달하는 현금을 지불한 만큼 또다시 보유 현금을 활용해 지분을 늘리는 것은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SK㈜는 불필요한 투자를 하지 않아 아낀 자금을 2017년 7월 글로벌 물류회사 ERS 지분 인수 등으로 활용해 수익을 창출했다는 점을 강조할 예정이다.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심판정 모습. 공정위는 15일 'SK실트론 사익편취 의혹' 사건과 관련해 전원회의를 개최한다./연합뉴스

최 회장 측 역시 사익편취와 무관하다는 근거를 풀어놓을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이 개인 자격으로 직접 지분 인수에 나선 것은 중국 기업 등 경쟁자의 인수를 막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기업이 30%에 가까운 지분을 인수할 경우 SK실트론에 사외이사 등을 파견해 경영에 깊이 관여할 수 있었다.

당시 채권단은 자격 제한이 없는 공개 경쟁입찰로 잔여지분을 매각해 최 회장이 지분을 인수할 것이란 보장도 없었다. 최 회장의 지분 인수와 관련해 이사회 개최 등 공식적인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지적에는 사외이사로 구성된 SK㈜거버넌스위원회 등의 검토를 거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번 공정위 판단이 향후 그룹 총수의 투자 참여에 대한 기준선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가 직접 지분 인수에 나서준다면 회사 입장에선 부담이 줄고 주주들에겐 책임 경영 의지를 보여줄 수 있다"며 "SK실트론 사건에 대한 제재가 확정된다면 총수의 지분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원회의 결정은 법원의 1심 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전원회의에서 과징금과 시정명령 같은 결정이 내려지고 SK가 불복하면, 이후 고등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된다. 공정위가 검찰 고발 조치를 제재에 포함한다면 검찰은 공정위 조사 자료 등을 바탕으로 SK㈜와 최 회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