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직원들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의 대법원 판단이 2주 뒤 나올 예정이다. 2012년 처음 소송이 제기된 지 9년 만에 최종 결론이 나오는 셈이다. 현대중공업이 패소할 경우 통상임금 인상분을 소급해 직원들에게 지급해야 하는데, 이 금액만 7000억원 이상이 될 전망이다. 삼성중공업(010140)과 대우조선해양 등 다른 조선소들도 이번 판결이 조선업계 통상임금 결정에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조선DB

◇ 9년 만에 대법서 최종 결론

3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이달 16일 오전 11시 현대중공업(현 한국조선해양) 통상임금 관련 상고심 선고 공판을 열 예정이다. 앞서 2012년 12월 현대중공업 근로자 10명은 "정기상여금 600%, 연말특별상여금 100% 등 700%와 설·추석 때 각각 50%씩 받는 상여금을 포함해 모두 800%를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통상임금은 근로자에게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하는 임금을 뜻한다. 초과근무와 휴일근무수당 등을 계산할 때 기준이 된다. 통상임금이 늘어나면 각종 수당도 늘어난다. 노조가 회사를 상대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기업 입장에선 인건비가 늘어나기 때문에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현대중공업이 이번 통상임금 재판에서 패소할 경우,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다시 계산해 부족한 금액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이번 재판의 소송액은 6억3000만원이지만, 통상임금 문제 처리를 위한 대표 소송으로 노사가 합의했기 때문에 나머지 직원에게도 소급 적용한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 업계에선 이 금액이 7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 '신의칙' 인정 여부가 이번 재판 쟁점

이번 재판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속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정기성(정기적 지급), 일률성(같은 직급에 똑같이 지급), 고정성(개인의 업적이나 성과에 상관없이 일을 한 모든 직원에게 지급)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또 다른 쟁점은 직원들의 요구가 민법에서 정한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어긋나는지 여부다. 신의칙은 계약 당사자들이 상대의 정당한 이익을 고려하고 신뢰를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민법상 원칙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앞서 2013년 12월 회사가 '경영상 어려움'에 처할 경우 통상임금 요구를 제한할 수 있다는 신의칙 원칙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재판부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도 회사의 경영 사정이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신의칙을 적용해 추가 지급을 면해준다. 반대로 회사가 충분히 부담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회사는 이를 지급해야 한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대법원 전경. /조선DB

앞서 2015년 진행된 1심에서 법원은 현대중공업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회사 경영 사정이 악화됐지만, 이를 이유로 근로자들에게 불이익을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며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 명절상여금 100%를 포함한 상여금 800%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반면 이듬해 2심 재판에선 명절상여금을 제외한 나머지 상여금 700%가 통상임금으로 인정되지만,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통상임금 인상분을 소급해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 현대중공업은 2015년 당시 조선업계 침체로 연간 누적 적자가 1조5401억원에 달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현대중공업이 신의칙을 적용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신의칙을 적용할 수 있는 기업 경영의 어려움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지엠과 쌍용차는 근로자들이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서 대법원으로부터 신의칙이 적용돼 승소했지만, 기아차는 신의칙 위반을 인정받지 못해 소송을 제기한 근로자들에게 수천억원을 지급했다. 올해 3월 금호타이어(073240)의 통상임금 소송에서도 재판부는 "근로자에게 추가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회사에 중대한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볼 수 없다"며 사측의 신의칙 위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조선업계 "이제 막 정상화 시작… 재무 부담 불가피"

현대중공업은 과거 조선업계 불황과 원자재 가격 인상 등을 이유로 재무상황이 좋지 않다고 주장한다. 조선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은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적자(연결 기준)가 6880억원에 달한다. 통상 선박 건조 과정에 1~2년이 걸리는데, 과거 조선업계 불황기에 저가로 수주한 선박들이 올해 실적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올해 대거 수주한 선박들은 이르면 2022년 하반기는 돼야 실적에 반영될 전망이다. 당장 예상치 못한 비경상적 자금 유출은 재무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반면 노조는 '못 받은 돈을 달라는 것'은 정당한 권리이므로 신의칙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다른 조선소들도 이번 판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업계의 '맏형' 격인 만큼, 이번 판결이 다른 조선사의 통상임금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현대중공업이 패소할 경우 잔업 등이 축소돼 결과적으로 근로자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면 통상임금의 150%를 지급해야 하는 잔업수당의 부담이 늘어서다. 실제 기아차도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한 뒤 매일 30분씩 하던 잔업을 중단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재판의 기준이 되는 '경영상 어려움'에 대한 명시적인 기준이 없어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면서 "(현대중공업이 패소할 경우) 이제 막 정상화를 시작한 조선업계에 재무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