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부산 강서구 부산신항. 가장 규모가 큰 2부두의 5번 선석에 스위스 선사 MSC의 1만TEU(1TEU=20피트 컨테이너)급 컨테이너선이 정박해 있었다. 최대 50m까지 컨테이너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안벽 크레인(QC)이 바쁘게 움직였다. 컨테이너선 위로 수입화물은 내리고 수출화물은 싣는 작업이 이어졌다. 2부두를 운영하는 부산신항만㈜에 따르면 지난해 485만TEU의 컨테이너가 2부두를 오갔는데, 올해는 이날까지 450만TEU 이상의 컨테이너를 처리했다. 연말까지 500만TEU를 넘어설 전망이다.
안벽 뒤편 장치장에는 선적을 기다리는 컨테이너들이 3단에서 최대 6단 높이로 쌓여있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앞두고 해외로 나가는 수출 화물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도 장치장 상황은 지난 8월과 9월처럼 '포화 상태'는 아니었다. 2부두를 운영하는 정성호 차장은 "최근 들어 선박의 정시성도 소폭 회복했고, 컨테이너 장치율(야적장에 컨테이너가 쌓여있는 비율)도 좀 나아졌다"며 "다만 단기적인 현상인지, 실질적인 변화인지는 모니터링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악으로 치닫던 물류난이 회복될 수 있다는 기대의 목소리가 나온다. 물류난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중국 → 미국 서안 노선'의 물동량이 감소했고, 천정부지로 오르던 컨테이너선 운임도 약보합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무너진 공급망 상황을 볼 때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21일 해운·물류업계에 따르면 부산신항의 장치율은 지난 18일 기준 82%였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전 장치율 75%보다 높지만, 지난 8월 월평균 85%를 고점으로 소폭 내려갔다. 장치율이 높아질수록 컨테이너 처리 속도가 늦어진다. 업계에선 선적·하역 효율이 좋은 적정 장치율을 75%~80%로 본다.
올해 여름 부산신항은 컨테이너를 쌓을 곳이 없어 홍역을 치렀다. 일부 부두는 장치율이 100%를 찍기도 했다. 늘어나는 수출화물에 비해 컨테이너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부산항만공사(BPA)는 지난 7월부터 비어있는 부지를 찾아 임시 장치장 2곳을 마련하기도 했다. 3번째 임시 장치장도 이달 중으로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물류난은 중국에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쏟아낸 수출 물량을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면서 이어져 왔다. 특히 중국 → 미국 서안 노선의 정체 현상이 심각했고, 연쇄적으로 다른 노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컨테이너선들이 항만에 묶이면서 물건을 실을 배를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어 운임이 치솟는 악순환이 생겼다.
덴마크 해운분석업체 씨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아시아 → 북미 서안 노선은 코로나 코로나 사태 전 3년과 비교해 평균 8.4일가량 선박의 운항 시간이 길어졌다. 34개 노선 가운데 유럽 → 오세아니아, 유럽 → 남미 등 2개 노선을 제외한 모든 노선에서 지연 현상이 나타났다.
다만 최근 들어 상황이 개선되는 지표도 일부 등장했다. 미국 수입 화물의 40%가 통과하는 로스앤젤레스(LA)항과 롱비치(LB)항의 물동량이 줄었다. LA항과 LB항의 지난달 수입화물은 총 85만2287TEU로 집계됐다. 지난해 10월보다 6% 감소했고, 올해 수입화물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 5월(98만450TEU)보다 13% 줄었다.
중국의 전력난으로 공장 가동률이 60%대까지 떨어지면서 수입물량이 줄어든 영향이 컸다. LA항만청은 21일(현지 시각)부터 27일까지 수입화물이 이번주보다 40%가량 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 남부 캘리포니아 해운거래소(Marine Exchange of Southern California)는 체선 문제가 4~6주 뒤쯤 해결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컨테이너선 운임도 지난달을 정점으로 내림세다. 글로벌 해운컨설팅업체 드류리(Drewry)에 따르면 지난달 40피트 컨테이너(FEU)당 1만달러를 웃돌던 전 세계 컨테이너 운임은 지난 18일 기준 9146달러로 낮아졌다. 국내에서 컨테이너선 운임지표로 많이 활용하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달 8일 4647.6을 고점으로 지난 19일 4555.2로 100포인트가량 내렸다.
물론 수출기업의 부담은 여전하다. 운임이 소폭 하락했지만 코로나 사태 이전과 비교해 여전히 3.4배 수준이기 때문이다. 또 LA항과 LB항을 비롯해 전 세계 주요 항만이 인력이나 화물차 수를 회복하지 못해 컨테이너 처리 속도가 좀처럼 붙지 못하고 있다. LA·LB항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선박은 이달 들어서도 평균 78척이 넘고, 대기 기간도 18일까지 늘었다.
이에 최소한 내년 중국 춘절(2월 1일) 때까지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업계에선 전망했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공장 가동을 정상화하면 다시 물류난이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근본적으로 떠났던 인력도 돌아와야 하고, 항만 인프라도 개선돼야 하는데 단기간에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