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신임 사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산업계 대표 강성 노동조합인 현대중공업 노조가 쟁의권을 획득하며 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대우조선해양과의 기업결합을 심사 중인 유럽연합(EU)은 현대중공업의 액화천연가스(LNG)선 사업 부문 매각을 요구하고 있다. 재계에선 10년 가까이 경영 수업을 받아온 젊은 오너가 현대중공업이 당면한 현안들을 해결할 경우 그룹 내부 장악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16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12일 조합원 투표를 통해 쟁의권을 확보했다. 노조는 월 기본급 12만304원(호봉승급분 별도) 인상 등을 사측에 요구하고 있으며, 이날 사측과 18번째 교섭을 진행할 예정이다. 노조는 이번주로 예정된 노조 지부장 선거가 끝나는 대로 실제 파업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노조는 임원 선거를 마친 다음 달 교섭 마무리를 위한 투쟁을 본격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왼쪽)과 정기선 현대중공업 신임 사장. /조선DB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사장에겐 승진 후 처음 맞는 노사 분쟁이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 사장은 앞서 지난달 12일 현대중공업지주와 한국조선해양의 대표이사로 내정됐다. 정 사장은 그룹의 핵심인 조선 부문을 맡으면서 '3세 경영 체제'의 막이 올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1982년생인 정 사장은 2009년 1월 현대중공업에 대리로 입사했다가 미국 유학 후 2013년 경영기획팀 수석부장으로 재입사했다. 이후 재무부서, 경영지원실 등 그룹 내 핵심 부서를 거치며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조선업계에선 정 사장이 이번 파업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업무 수행 동력이 좌우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현대중공업은 연초부터 이어진 수주 랠리로 2~3년 치 일감을 확보한 상태다. 하지만 선박 건조 후 실적에 반영되기까지 약 2년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아직 수익성 개선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에 선박 건조 비용의 20%를 차지하는 후판(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 가격 인상으로 올해 3분기까지 현대중공업의 누적 영업손실 규모는 3200억원에 달한다. 경영진 입장에선 경영환경의 불확실성 때문에 노조의 요구를 선뜻 들어주기 어렵다.

강성 노조로 분류되는 현대중공업 노조는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전면 파업도 마다하지 않는다. 올해 7월 울산조선소 내 크레인을 점거한 것처럼 불법행위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조선소에서 전면 파업이 발생해 선박 건조 일정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최소 수십억원의 피해가 불가피하다. 앞서 2018년 현대중공업 전면 파업 당시 사측이 추산한 일평균 매출 손실액은 83억에 달했다.

지난 7월 7일 현대중공업 노조가 전면 파업을 단행하고 울산 본사의 턴오버 크레인을 점거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

정기선 사장이 당면한 문제는 또 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이 성사되려면 6개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중국, 카자흐스탄, 싱가포르에서만 기업결합이 승인됐고 EU, 한국, 일본 등 3개국에선 아직 승인이 나지 않았다. 인수작업은 3년 가까이 지지부진한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EU는 독과점을 문제 삼아 액화천연가스(LNG)선 사업 일부 매각 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양사의 LNG선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약 70%에 달한다.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선은 1척당 건조 가격이 2000억원에 달해 현대중공업의 대표 '효자 선종'이다. LNG 사업 매각은 곧 경쟁력 악화를 의미한다.

대우조선해양 내부에서도 인수합병 반대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합병에 반대하며 파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노조 지도부는 지난달부터 산업은행 앞에서 단식 투쟁에 돌입한 데 이어 하루 4시간씩 부분 파업을 하면서 쟁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까지 지난 14일 대우조선해양 조선소를 방문해 "합병 자체가 맞는지, 의사결정을 번복하는 게 타당한지 등을 심도 있게 고민하겠다"고 말하면서 정치권의 관심까지 쏠리는 모양새다.

재계 관계자는 "노사 갈등 문제와 대우조선해양 M&A 문제는 현대중공업이 실질적으로 당면한 현안들"이라며 "권오갑 지주 회장과 한영석 부회장의 역할도 크겠지만, 정기선 사장 입장에선 그룹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리더십을 보여줄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