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요소 수출 제한으로 시작된 요소수 대란이 전 산업계를 강타하면서 ‘차이나 리스크’에 대한 경계심이 되살아나고 있다. 중국과 호주의 외교 갈등이 요소수 대란으로 이어진 것처럼 한국과는 관계 없는 중국의 국제 분쟁이 국내 경제에 타격을 미치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한국은 중국이 세계 패권 경쟁의 중심에 등장한 이후 여러차례 직간접적 피해를 입어왔는데, 지금처럼 중국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경제 안보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요소수 대란은 지난달 15일 중국 해관총서(관세청)가 요소 등 비료 품목 수출 검역 관리방식을 강화하면서 시작됐다. 지난해 10월부터 중국이 호주산 석탄 수입을 금지하면서 중국 내 석탄 부족과 전력난이 발생했고, 그 결과 석탄 가격이 급등하면서 요소 생산이 위축됐다. 중국이 내수 시장을 지키기 위해 사실상 수출 제한과 다름없는 조치를 내리면서 중국산 요소 수입량이 급감했고, 차량용 요소수 제조에 필요한 요소의 97%를 중국산에 의지하는 한국은 직격탄을 맞았다.

9일 전북 익산시 실내체육관 앞에 요소수를 구입하려는 시민들이 대기해 있다. /연합뉴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번 요소수 대란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중국과 호주는 원자재 교역으로 탄탄한 관계를 이어왔지만, 미·중 갈등 상황에서 호주가 미국 편에 서면서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4월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원지의 국제 조사를 요구한 것도 양국 관계를 악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호주는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 협력체에 참여하며 미국의 중국 견제에 동참했다. 중국은 호주에 무역 보복을 가하기 위해 지난해 5월 호주산 쇠고기·보리 수입에 제재를 가했고, 10월부터는 석탄 수입까지 금지했다.

중국의 패권 경쟁으로 한국이 피해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6년 7월 미국과 한국이 한반도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자 중국은 한국 관광을 막고 한국 제품 판매를 금지하는 등 전방위 경제 보복을 가했다. 지난해 한국은행은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관광 수입이 21조원 이상 줄어들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엔 미국이 중국 통신장비 업체의 5세대(G) 장비가 중국 스파이 활동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화웨이의 5G 장비를 배제할 것을 동맹국에 요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LG유플러스(032640)가 미국의 압박을 받았다.

앞으로 중국의 패권 경쟁으로 인한 국내 영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동수 산업연구원 해외산업실장 역시 “미·중 갈등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는 나라는 많지 없지만, 특히 한국은 유럽연합 등 여러 나라가 뭉쳐있는 곳과 달리 홀로 움직여야 해 대응력이 약하다”며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을 약한 고리로 인식하고 서로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할 수 있는만큼, 우리는 이들의 분쟁에 따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가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차이나 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이다. 한국무역협회가 국내 수입품 1만2586개를 분석한 결과, 중국 비율이 80% 이상인 품목이 1850개에 달했다. 미국(503개)에 비하면 3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중국이 생산·수출을 통제할 경우 요소수처럼 타격을 받을 수 있는 품목은 여러 개다. 이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에 들어가는 수산화리튬은 중국산 비율이 85%에 달하고, 희토류를 원료로 만드는 영구자석도 중국 비율이 86%다. 영구자석은 전기차 모터를 비롯해 TV 등 IT(정보기술) 제품, 미사일 등 첨단 기기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핵심 소재다.

이재수 전국경제인연합회 지역협력팀장은 “중국이 주요 2개국(G2) 중 하나인만큼 세계 각국에 미치는 영향력은 점점 커질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중국 의존도가 높은데, 중국이 외교 상황 등에 따라 수출 통제에 나서면 얼마든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기업들은 지리적 이점과 가격 경쟁력 등을 고려해 지금까지 중국산 원자재, 재품을 채택해왔는데 이번 요소수 대란을 계기로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미국과 중국이 화해 모드를 조성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지난 9월 미국 요청으로 캐나다 정부에 체포된 이후 가택연금 상태에 있던 화웨이의 멍완저우 부회장이 석방됐고, 올해 말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화상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조 바이든 미국 정부는 내년 중간선거 등을 위해 중국의 구매력이 필요하고, 중국은 외교력 과시를 위해 미국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트럼프 정부 때와 달리 서로 윈윈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안유화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역시 “미국과 중국의 긴장관계는 물밑 협상을 통해 서로 양보하며 완화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