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물류대란과 관련해 미국 로스엔젤레스(LA)항과 롱비치항이 터미널에 쌓인 컨테이너들에 대해 선사들에게 벌금을 물리겠다고 발표했다. 컨테이너 선사들은 "영역 밖의 일에 대해 책임을 지우는 극단적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CNBC에 따르면 지난 25일(현지 시각) 기준 LA항과 롱비치항에는 77척의 선박이 바다 위에서 정박을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 최다 대기 선박 수는 17척이었다. 77척의 선박에 실린 화물의 가치는 총 240억달러(약 28조1376억원)로 추산된다. LA항 앞에 떠 있는 컨테이너만 20만개로 알려졌다. 지난달 LA항은 역대 최대, 롱비치항은 역대 두 번째로 많은 화물 처리 기록을 세웠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24시간 항만 가동 지시에도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항만 당국은 컨테이너선사에 대한 벌금 조항을 신설했다. 트럭에 실을 컨테이너는 9일 동안, 철도로 운송되는 컨테이너는 3일간 부두에 쌓아둘 수 있는데, 이 기간을 넘기면 컨테이너 1개당 100달러를 부과하고 이후 매일 100달러씩 벌금액을 올릴 방침이다. 컨테이너선 한 척에는 수천개에서 수만개의 컨테이너가 실린다.
선사들은 항만 당국이 컨테이너 적체의 원인을 선사에게 돌린다며 반발하고 있다. 물류대란은 미국의 화물 수입량 증가와 항만의 낮은 화물 수용력, 미국 물류업계 인력난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데 선사에게만 책임을 떠넘긴다는 것이다.
28일 LA항에 따르면 미국 최대 항만인 LA항의 올해 누적 화물 수입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수치를 훌쩍 웃돈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9월까지 총 343만6812개의 컨테이너가 LA항을 통해 들어왔는데, 올해는 같은 기간 84만여개가 늘어 427만8443개를 기록했다. 그러나 LA항의 화물 처리 능력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산업 정보업체 IHS마킷(Markit) 조사 결과 LA항의 화물 처리 효율은 전 세계 351개 항구 중 328위로 나타났다.
최악의 인력난까지 덮쳤다. 바다에 떠 있던 컨테이너선들이 어렵사리 터미널에 배를 접안해도 컨테이너를 내려줄 인력이 부족해 며칠동안 하역을 기다리기 일쑤다. 육상 운송도 문제다. 컨테이너를 미 대륙 곳곳으로 운송할 트럭 운전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국트럭운송협회에 따르면 부족한 인력은 약 8만명으로,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30% 늘었다. 이 때문에 LA항과 롱비치항에는 컨테이너가 열흘 이상 터미널에 머무르는 상황이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컨테이너 적체는 선사가 일을 안 해서가 아니다. 터미널의 화물 수용 능력이 안 받쳐주거나 화주가 화물을 안 찾아가는 등 많은 요인들이 있는데, 영역 밖의 일까지 선사에게 책임을 지우는 극단적 조치"라면서 "터미널에 컨테이너가 얼마나 쌓여있는지 파악조차 안 돼 뚜렷한 대책을 세우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사들에게 벌금을 물린다고 터미널 상황이 나아지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국내 최대 컨테이너선사인 HMM(011200)은 미국 당국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어 강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연방해사위원회(FMC)는 지난 7월부터 HMM이 화주들에게 운임과 혼잡 할증료, 체화료, 지체료 등을 정당하게 책정해 부과하고 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항만 적체와 고운임에 대한 화주들의 반발에 따른 것이다. HMM은 지난달 FMC 측에 성명자료를 제출하고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요금 부과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벌금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최대 화물 수입국으로서의 입지 때문에 미국을 빼놓고선 선사 운영이 어렵다. 선사들은 미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불합리한 조치에도 강하게 반대 의견을 내기 어렵다"며 "세계해운위원회(WSC) 등 컨테이너선사 단체를 통해 공동의 목소리를 내는 등 방법을 찾아볼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