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가채무가 내년 사상 최초로 100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2017년부터 2025년까지 9년간 늘어나는 국가채무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2016년까지 68년간 누적된 국가채무를 넘어설 정도로 급증하고 있지만, 정작 재정위기 대응엔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5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관에서 '한국의 재정건전성 진단과 과제' 세미나를 개최했다. 권태신 한경연 원장은 "내년에는 사상 최초로 나라 빚 1,000조원, 국가채무비율 50% 시대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며 "과거 한국이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안정적인 수준으로 국가채무비율을 관리하면서 외국인들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인만큼 이제부터라도 나라살림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은 박형수 K-정책플랫폼 원장은 "정부의 국가재정 운용계획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5년까지 9년 간 국가채무가 782조원 늘어날 전망"이라며 이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2016년까지 68년 간 누적 국가채무액(627조원)의 1.2배에 달하는 수치"라고 설명했다.
박 원장은 "한국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주요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정지출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았지만 아동수당 확대, 기초연금 인상 등 한번 늘리면 줄이기 어려운 항구적 복지지출 비중이 높아 재정악화가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반면 G7 등 주요 선진국은 코로나 대응을 위해 늘린 재정지출 규모를 빠르게 축소하면서 2023년부터는 재정건전성이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원장은 "한국은 빠른 고령화 속도와 잠재성장률 저하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며 "위기 극복 이후 빠르게 재정이 정상화됐던 과거 위기와는 달리, 이번에는 코로나 종식 후에도 만성적인 재정악화에 시달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재정건전성 훼손을 방어하기 위해 재정적자와 국가채무한도를 법으로 규정하는 재정준칙을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원식 건국대 교수는 "2022년 예산 604조4000억원 중 보건·복지·고용 분야가 216조7000억원으로 가장 큰 비중(35.9%)을 차지할 뿐 아니라 재정적자 기여도도 30.6%로 매우 높다"며 늘어나는 복지비 부담을 최근 재정악화 및 국가부채 증가 원인으로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교육 인구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2022년 교육비 예산(83조2000억원)이 전년 대비 12조원(16.9%)이나 늘었다"며 "교육비 지출이 방만하게 운영되면서 교육 성과가 떨어지고 사교육이 증가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이미 오랜 기간 사회보장 및 교육 지출이 늘고 경제분야 지출은 줄어들면서 재정지출의 비효율이 커졌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OECD의 재정위기관리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OECD 중 재정위기 대응에 가장 소극적인 국가 중 하나"라며 "정부정책 뿐 아니라 각 정당의 공약이 재정에 미치는 영향까지 분석하는 네덜란드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에서는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선결 과제로 구속력 있는 재정준칙의 도입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옥동석 인천대 교수는 "모든 정부는 재정을 지금 쓰지 않더라도 다음 정부가 어차피 쓸 것이라는 생각에 필요 이상으로 재정을 지출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며 "방만한 재정지출을 막으려면 하루빨리 재정준칙을 제정하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적인 위원회를 통해 정부의 재정운용을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