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빅3 대형조선소부터 중형조선소까지 자율운항 선박 시스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자율운항 선박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스스로 최적의 항로를 설정하고 항해할 수 있는 선박을 말한다. 자율주행 자동차처럼 라이다(LiDAR)나 특수 카메라를 활용해 선원 없이도 운항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자율운항 선박 시장이 오는 2025년 18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조선업계는 기술 상용화를 서둘러 관련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계획이다.

대전에 위치한 삼성중공업 선박해양연구센터 내 원격관제센터에서 자율운항 중인 모형선박 ‘Easy Go(이지 고)’에 장착된 고성능 카메라를 통해 경남 거제 조선소 주변 및 장애물을 확인하고 있다. /삼성중공업 제공

◇ 빅3부터 중형조선소까지 기술 개발 전념

25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010140)은 지난달 세계 최초로 대형 선박 두 척이 해상에서 자동으로 충돌을 피하는 ‘자율운항 기술’을 실증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중공업이 독자 개발한 자율항해 시스템 ‘SAS(Samsung Autonomous Ship)’를 탑재한 두 선박은 최대 14노트(시속 26km) 속도로 서로 마주 보며 운항하던 중 약 2㎞를 앞두고 스스로 회피한 뒤 항로를 재설정했다. 삼성중공업은 오는 2022년 SAS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은 사내 벤처기업 아비커스를 통해 자율운항 선박 시스템 ‘하이나스(HiNAS)’ 고도화를 진행 중이다. 올해 6월에는 하이나스를 탑재한 12인승 소형 선박이 약 10㎞를 스스로 운항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올해 말까지 AI가 조종하는 초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에 대한 시험 운항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1월에는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에서 AI 선장을 탑재한 요트형 레저 보트를 공개할 계획이라고 한다.

조선업계는 자율운항 시스템뿐 아니라 사이버 보안 시스템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 자율운항 중인 선박이 해킹당할 경우 자칫 대형 충돌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대우조선해양이 자체 개발한 스마트십 플랫폼 ‘DS4′는 최근 미국 선급 ABS로부터 업계 최초로 사이버 보안 분야 최고 등급 인증을 획득했다. 삼성중공업도 삼성SDS와 손잡고 자율운항 선박 전용 보안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해적에 맞서 물대포와 같은 선박 보호 시설을 구축했다면 지금은 사이버 보안에 더 신경 쓰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중형조선사도 자율운항 선박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케이조선(옛 STX조선해양)은 지난 19일 세계 최고 선박 자율운항 기술을 보유한 노르웨이 콩스버그와 업무협약을 맺고 스마트 선박 기술을 공유하기로 했다. 케이조선은 콩스버그와의 협력을 통해 자체 보유한 스마트 선박 시스템 ‘카디스(K-ADIS)’를 고도화해 세계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협력에 대해 케이조선 관계자는 “대형 조선소와의 디지털 기술 격차를 만회할 계기를 마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자율운항 전문 사내 벤처 아비커스가 경북 포항운하 일원에서 '선박 자율운항 시연회'를 개최했다. /현대중공업그룹 제공

◇ 한··일 각축전 가열 … 제도적 기반부터 마련돼야

조선사들이 앞다퉈 자율운항 선박 기술 개발에 뛰어든 이유는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어큐트마켓리포트에 따르면 자율운항 선박 관련 시장은 올해 95조원에서 2025년 180조원까지 2배가량 성장할 전망이다. 건조한 선박에 자체 개발한 자율 운항 시스템을 탑재할 경우 조선사들의 수익도 극대화할 수 있다.

연관 분야의 파급 효과도 상당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자율운항 선박 기술이 상용화될 경우 물류 효율성은 10% 이상 높아지고 인적 해양 사고는 약 75% 줄어들 수 있다. 해운사들 역시 운용비용이 약 22% 낮아진다.

다만 선박 스스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완전 자율운항 단계 도달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국제해사기구(IMO)에 따르면 자율운항 선박은 크게 4단계로 나뉜다. 현재 국내 조선업계가 개발한 자율운항 선박 기술 등급은 1단계와 2단계 사이에 머무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사들은 2025년까지 최소 3단계로 진입하는 게 목표다. 3단계는 선원이 탑승하지 않은 상태로 원격제어할 수 있는 수준을 말하며 4단계는 완전 자율운항 단계를 말한다.

인공지능(AI)이 선박의 상태와 항로 주변을 분석해 이를 증강현실(AR) 기반으로 항해자에게 알려주는 ‘하이나스(HiNAS) 시연 모습. /아비커스 홈페이지

경쟁국들도 자율운항 선박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은 신산업 육성을 골자로 한 ‘중국 제조 2025 전략’을 통해 정부 차원에서 자율운항 선박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2019년 세계 최초로 자율운항 선박 시운전에 성공한 데 이어 오는 2025년까지 민관합동으로 자율운항 화물선 250척을 건조할 계획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달 ‘K조선 재도약 전략’을 발표하고 자율운항 선박 기술에 16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2025년까지 기술 개발을 완료하고, 2030년까지 세계 자율운행 선박 시장의 50%를 점유하겠다는 계획이다.

조선업계는 자율운항 선박 상용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부터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직 국내 선박 관련 법령에 자율운항 선박에 대한 정의와 자율 등급별로 선박을 구분하는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2023년까지 자율운항 선박에 대한 정의와 운항 주체, 자율등급에 대한 기준을 정립할 계획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국과 일본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자율운항 선박 기술 개발이 한창”이라며 “시장 선점 시 기술 로열티를 통해 향후 비수기에도 일정 수익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