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3세 경영 체제가 본격화했다. 다만 정 사장이 부친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지분을 증여 또는 상속받기 위해선 1조원에 가까운 재원이 필요한 만큼, 승계 작업 완수까지 갈 길이 멀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에선 정 사장이 배당금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동시에 현대오일뱅크 기업공개(IPO) 등으로 지분 가치를 높일 것으로 내다봤다.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기준 그룹 지주사인 현대중공업지주의 대주주는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으로 지분 26.6%를 보유하고 있다. 장남 정기선 사장의 지분은 5.26%다. 두 부자(父子)는 지주사 지분 31.86%를 보유함으로써 중간 지주사격인 한국조선해양, 현대제뉴인, 현대오일뱅크와, 그 산하의 조선·건설기계·에너지 계열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재계에선 이번 정 사장의 승진을 두고 경영 안정화와 승계 가속화 목적이라고 평가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한화그룹을 비롯해 최근 오너 3·4세 등 젊은 경영진들이 전면에 빨리 등장하는 추세"라며 "정기선 사장의 경영 보폭을 넓힘으로써 조직을 확실하게 지배할 수 있게 힘을 실어주고 승계를 확고히 하겠다는 메시지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정 사장에게 남은 승계 작업은 사실상 지분 확보다. 현대중공업그룹이 이미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을 완료한 만큼, 정 사장 입장에선 부친이 보유한 지주사 지분만 물려받으면 된다. 문제는 지분 증여·상속 과정에서 납부하게 될 막대한 세금이다. 현재 정몽준 이사장이 보유한 지분 가치는 약 1조4000억원으로 추산된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30억원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선 최고 세율인 50%가 적용되고, 대주주 경영권 포함한 주식에 대해선 60%까지 과세된다. 만약 당장 정 사장이 부친의 지분을 증여받는다면 지분 가치 60%에 달하는 8400억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향후 상속으로 주식을 물려받을 경우 상속일 전후 2개월 평균 주가로 지분 가치가 산출되기 때문에 금액이 달라질 수 있다.
정 사장이 승계 작업을 완수하기 위해선 막대한 현금이 필요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우선 정 사장이 활용할 수 있는 계열사 보유 주식이 많지 않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정 사장이 보유하고 있는 상장 계열사 주식은 현대일렉트릭 156주, 한국조선해양 544주, 현대건설기계 152주 등이다. 지분 가치로 따지면 약 6000만원에 불과하다. 사실상 유일한 수익원은 급여와 배당뿐이다. 급여가 공시에 보고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5억원 미만으로 추정된다.
재계에선 현대중공업지주의 배당금이 승계 작업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2018년 설립 이후 매년 주당 1만8500원의 현금 배당을 실시하고 있다. 올해 4월 액면 분할 전 83만1097주를 보유했던 정 사장은 지난해 총 153억7529만원(세금 포함)을 배당으로 챙길 수 있었다. 여기에 현대중공업지주가 올해 처음으로 주당 1850원의 중간배당까지 실시하면서 76억8765만원의 배당을 추가로 챙겼다.
계열사들의 연이은 IPO도 승계 작업의 일환이란 분석이 나온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올해 현대중공업 IPO를 성공적으로 완료한 데 이어 지주사가 74.1%의 지분을 보유 중인 현대오일뱅크도 IPO에 나설 계획이다. 현대오일뱅크까지 성공적으로 IPO를 마무리하게 되면, 정 사장이 보유한 현대중공업지주의 지분가치가 커지면서 승계 과정에서의 자금 확보가 수월해질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증여·상속 과정에서 부담하게 될 세금이 상당한 만큼 지주사 지분 매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재계 사례를 종합해볼 때, 통상 보유 지분의 3분의 1가량을 매각해 재원으로 활용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005930) 회장의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최근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등 삼성 일가가 2조원이 넘는 계열사 주식을 매각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