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전 세계 각국이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늘리며 호황을 맞았던 국내 건설기계 업계가 중국 최대 민영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 그룹의 도산 위기에 긴장하고 있다. 중국 건설 시장은 한국 건설기계 업계의 매출 비중이 높은 나라다. 건설기계 업계는 이번 헝다 사태의 여파를 예의주시하면서 신흥 시장 진출로 위험 분산에 나설 계획이다.

현대두산인프라코어의 굴착기 DX800LC-7 모습. /현대두산인프라코어 제공

◇ 中 건설 시장 침체 우려… "헝다 사태 영향 제한적" 반론도

7일 건설기계 업계에 따르면 증권가는 올해 중국 내수 굴착기 판매량 전망치를 기존 32만4000대에서 최근 29만7000대로 8.3% 하향 조정했다. 중국 정부가 2분기부터 경기 부양 속도를 조절하고 있고, 최근 헝다 사태까지 발생한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건설기계 업계의 분위기는 좋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국 등 세계 각국은 경기 부양을 위해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렸다. 올해 상반기 건설기계 누적 판매량은 총 5만1803대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29.6% 증가했다. 같은 기간 현대건설기계는 작년 상반기보다 186% 증가한 1504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올해 현대중공업그룹에 편입된 현대두산인프라코어도 작년 상반기 대비 15% 늘어난 219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2분기부터 긴축에 들어가면서 신규 건설 공사 발주가 줄기 시작했다. 여기에 헝다그룹이 도산 위기에 빠지면서 건설기계 업계의 실적 상승세가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업계 관계자는 "헝다그룹이 부동산 개발을 주력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건설 경기 자체가 침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국내 건설기계 기업들의 중국 매출 비중은 높은 편이다. 현대건설기계는 올해 2분기에만 중국 시장에서 259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전체 매출액의 25%에 달하는 규모로 해외 시장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이다. 같은 기간 현대두산인프라코어 역시 중국 시장에서 3122억원을 벌어들이며 전체 매출액 중 14%를 차지했다. 이는 2914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북미, 유럽 시장을 합친 것보다 높은 수준이다.

헝다 사태가 국내 건설기계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헝다는 부동산 투자 기업인데, 건설 장비 대부분은 일반 부동산 공사보다 국가 차원의 토목 공사에 주로 투입된다"라고 말했다.

◇ "전망 좋은 신흥 시장으로" 중국에서 눈 돌리는 건설기계

국내 건설기계 업계는 불확실성이 커진 중국 시장의 비중을 낮추는 추세다. 현대건설기계의 중국 시장 매출 비중은 지난해 2분기 42%에서 올해 2분기 25%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현대두산인프라코어도 27%에서 14%로 줄었다.

중국 시장 비중이 줄어든 만큼 건설기계 업계는 신흥 시장 확대 전략을 펼칠 방침이다. 올해 9월 말 영국의 건설기계 전문 리서치 기관인 오프하이웨이리서치는 북미와 신흥 시장의 수요 증가로 올해 전 세계 건설 장비 판매량이 113만3706대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집계를 시작한 2002년 이래 최대치다. 최근 중국 시장이 주춤하고 있지만, 북미와 신흥 시장이 이끄는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란 게 오프하이웨이리서치의 설명이다.

현대건설기계의 굴착기 HX300SL. /현대건설기계 제공

현대건설기계는 신흥 시장 중에서도 인도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2007년 인도 푸네시에 법인과 생산공장을 설립한 현대건설기계는 연간 6000대의 건설 장비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아프리카와 중동, 동남아 시장 선점을 위한 교두보로 인도를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2분기 인도 시장이 현대건설기계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다. 최근에는 중남미 시장 진출도 늘리고 있다. 지난 8월 한국조선해양으로부터 브라질 해외법인 지분 100%를 인수하고 현지 특화 모델 생산에 나서는 이유다. 최근 브라질 최대 건설장비 렌털회사인 아르막과 굴착기 263대를 총 2500만달러(약 300억원)에 수주하는 계약도 체결했다.

현대두산인프라코어는 북미 시장 공략에 나섰다. 시장 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주력 상품인 미니 굴착기 라인업을 구축하고 판매 채널도 확대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판매량은 1399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1% 늘었다. 현대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올해 말 유상증자로 조달할 자금도 북미 지역 영업 확대를 위한 딜러망 확장에 투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 시장에서도 선전하고 있는데, 이집트발(發) 굴착기 수주가 늘면서 올해 현대두산인프라코어의 이집트 건설 기계 시장 점유율은 50%까지 상승할 전망이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현대건설기계는 대형 건설 장비와 인도·중남미 시장을, 현대두산인프라코어는 중소형 건설 장비와 북미·아프리카 시장에 중점을 두고 있는 만큼 중장기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