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술시장이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63% 성장할 때 국내 시장은 1.6% 성장해 사실상 정체상태라는 분석이 나왔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막대한 컬렉션을 계기로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을 활용해 상속세 등을 미술작품으로 대신 납부할 수 있는 '미술품 물납제' 등 제도적 기반 조성과 산업 육성방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30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세계 미술시장은 지난해 기준 501억달러(약 59조원) 규모로 집계됐다. 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전년 대비 22%가량 줄어든 것으로, 2019년 기준으로 보면 644억달러(약 74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세계 자동차 반도체 시장 규모가 280억달러, 음반시장 규모가 216억달러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거대 시장이다.

전경련은 "세계 미술시장은 미국, 영국, 중국 등이 주도하는 선진국형 산업으로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회화, 조각 등의 미술 작품은 갤러리(화랑), 경매 등 특정 유통시장을 통해 거래되는데, 일정 수준 이상의 구매자(콜렉터)의 구매력과 사회적 문화예술 기반이 필요하다.

전경련 제공

미술산업은 관광 등 연관산업과 경제·산업적 시너지가 큰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세계적 미술도시가 된 영국 게이츠헤드 지역의 옛 탄광마을 지역은 연 1865만명이 방문해 연 6억2000만파운드(약 9929억원)를 숙박비로 지출하고, 약 2만명의 직·간접 고용 효과를 봤다. 실제 문화예술산업의 부가가치계수는 0.827로 서비스업(0.815), 일반 제조업(0.568)보다 높다.

전경련은 최근 국내 미술시장에 대한 국내외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수익률이 좋은 미술작품에 투자하는 '아트테크'에 대한 관심과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미술문화재 유산 등이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한국 구매력과 아시아 시장 진출의 지리적 매력도가 더해져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는 내년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또다른 3대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역시 부산 개최를 검토 중이다.

그러나 세계 미술시장 대비 한국 미술시장은 성장이 정체돼 있다. 세계 미술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급격한 위축을 겪은 2009년 395억달러에서 2019년 644억달러 규모로 빠르게 회복해 지난 10년간 63% 성장한 반면, 국내 미술시장은 지난 10년간 1.6% 성장(2009년 4,083억원→2019년 4146억원)에 그쳤다.

산업발전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거래시장의 경쟁력을 봐도 한국은 세계 15위 수준이다. 아트프라이스가 지난 2019년 집계한 세계 순수미술(골동품 등 제외) 경매시장은 미국(46억1400만달러), 중국(41억200만달러), 영국(21억700만달러) 등 3국이 주도하고 있다. 한국(5500만달러)은 미국, 중국과 각각 84배, 74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전경련은 국내 미술시장의 발전이 부진한 이유로 세계적 미술관 등 미술산업 인프라가 충분치 않다는 점을 꼽았다. 세계 주요 미술관의 소장품 현황을 살펴보면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약 20만점,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미술관이 6만6000여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반면 국내 국립현대미술관(약 8500점), 서울시립미술관(약 5000점) 등은 1만점이 채 되지 않는다.

작가의 작품 판매금액으로 볼 수 있는 국내 미술시장의 브랜드 경쟁력도 아직 주요국 대비 뒤쳐지고 있다. 아트프라이스가 집계한 연간 경매판매액 기준 1000대 작가 중 중국(395명), 미국(165명) 대비 한국은 21명의 작가가 이름을 올렸다. 전경련은 "중국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 경제발전과 함께 중국 경매시장이 급성장하였고, 더불어 중국 출신 작가들의 위상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 주요국은 제도를 통해 기부와 예술 향유문화가 일찍 발전하면서 미술시장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1960년대부터 프랑스, 영국 등이 도입한 '미술품 물납제'는 상속세 등을 미술작품으로 대신 납부할 수 있도록 했다. 전경련은 "물납제 도입의 역사적 배경에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문화‧예술자본이 풍부한 민간의 기부를 촉진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며 "이렇게 확보된 문화유산은 세계적 미술관 설립으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고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이 주목받으며 미술계를 중심으로 물납제 도입 논의가 이어졌으나 결국 불발됐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작년 홍콩 민주화시위와 코로나로 '아트바젤 홍콩'이 취소되면서 아트바젤이 포스트 홍콩으로 부산을 검토하는 등 국내 미술시장의 잠재력에 대한 관심과 기회가 높아지는 상황"이라며 "지금 세계를 선도하는 K팝처럼 한국의 미술시장이 'K-아트마켓'의 명성을 얻으려면 미술 선진국처럼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제도적 지원과 산업 육성방안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