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가 2050년 탄소중립 계획을 논의하는 자리에 시민단체가 기습 난입해 행사가 취소되는 일이 발생했다. 산업계는 정부의 무리한 탄소중립 계획을 막기 위해 기업의 현실을 전달하려 하고 있지만 그 기회조차 막혀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28일 오후 4시 대한상공회의소는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 1층 회의실에서 2050 탄소중립 및 2030년 국가 감축목표(NDC)에 대해 논의하는 산업계 간담회를 개최하기로 했었다. 이날 간담회는 지난달 경제5단체가 ‘탄소중립기본법 제정에 대한 경제계 의견’을 통해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와 경제계 소통창구 개설을 제안하면서 이뤄졌다. 산업계는 이 자리에서 2030 NDC 달성과 국내 기업의 이행 부담 완화를 위한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간담회가 시작되기 전 시민단체 ‘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 10여명이 회의장을 점거했다. 이들은 ‘2030 탄소감축 발목잡는 산업계를 규탄한다’, ‘기후악당, 출입금지’, ‘기업의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이다’ 등의 문구가 쓰인 현수막을 들고 회의장 입구를 가로막았다. 한 시위자는 기업들이 자신만의 이익을 위하고 있다며 장난감 총으로 가짜 지폐를 뿌리기도 했다.

지난 28일 탄소중립위원회와 산업계의 간담회가 예정된 서울 중구 대한상의 회의실 앞에서 건물 관계자들이 시위를 하고 있는 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들을 막고 있다. 회의장 입구에서 진행한 이들의 시위로 이날 간담회는 취소됐다. /연합뉴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간담회 시작 30분 전인 3시 30분쯤 퇴거를 요구했지만, 이들은 응하지 않았다. 시위대는 결국 오후 4시 30분쯤 경찰 기동대가 출동한 후 자진 해산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하기로 했던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등 경제단체 인사와 삼성전자(005930), 현대차(005380), 포스코(POSCO), LG화학(051910) 국내 기업 임원들, 윤순진 탄중위 공동위원장 등은 결국 회의장에 들어서지 못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시민단체와의 대치가 길어져 간담회를 아예 취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산업계는 현실에 기반해 탄소중립 목표치를 수립해야 한다는 의견을 탄중위 측에 전달할 예정이었다. 우 부회장은 “2050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수소환원제철,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등 미래기술이 필요하나 2030년까지 해당기술이 개발되는 것이 어렵다고 평가되고 있다”며 “이는 단기간에 추가적인 감축여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8년여밖에 남지 않은 2030 NDC는 현실적인 기술수준과 감축여력을 고려해 수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 기업은 ‘탄소중립 관련 기술은 기술개발 성공여부가 불확실하고 막대한 비용이 드는 만큼 정부의 과감한 자금 투입 및 세제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건의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간담회가 취소되면서 이같은 의견은 전달되지 못했다. 산업계 관계자는 “당장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어려운 기업의 현 상황을 적극 전달해도 정부 정책에 반영되기 어려운데, 이렇게 만들어진 자리까지 취소되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