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화물선(벌크선) 운임이 2008년 원자재 '슈퍼사이클'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수급보다 태풍 등 재난현상의 영향이 더 커 운임이 지금과 같은 수준을 장기간 유지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27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건화물선 운임 지표인 발틱운임지수(BDI)는 지난 24일 4644를 기록했다. 일주일만에 8.6%(369포인트) 상승하면서 2009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4600선을 넘었다. 올해 3분기 평균 BDI도 3632로 슈퍼사이클 기간이었던 2008년 3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 북서부 닝샤 후이족 자치구에서 농부들이 옥수수를 수확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자연재해로 중국과 미국의 주요 항만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은 점이 운임 상승의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7월 태풍 '인파(Infa)'가 중국에 상륙한 것을 시작으로, 8월 말 미 걸프만의 허리케인 '아이다(Ida)' 피해, 이달 중순 동북아시아에 발생한 태풍 '찬투(Chanthu)' 등으로 선박 운항에 차질을 빚었다.

아이다로 피해를 입은 미국 미시시피강 하구는 다음달에나 설비가 완전 정상화될 전망이다. 미국산 대두와 옥수수의 본격적인 출하시기를 앞둔 상황에서 수출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미국 농무부는 올해 9월부터 내년 8월까지 옥수수 수출량은 6250만톤, 대두 수출량을 5690만톤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수출량보다 각각 700만톤, 460만톤 줄어든 수치다.

벌크선 시장의 주요 화물인 석탄 역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국제정치가 맞물리면서 해상 운송 물동량이 늘었다. 중국 정부는 광산 안전지침을 강화한 뒤 자체 석탄 생산량이 좀처럼 늘지 않으면서 석탄 수입량을 확대했다.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중국의 석탄 수입량은 8663만톤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20% 증가했다. 중국 정부는 또 호주와 무역분쟁으로 제철용 원료탄 수입이 어려워지면서 몽골산으로 대체하려고 했으나 코로나 여파로 육로수송이 제한되고 있다.

유럽도 석탄 수입을 늘리고 있다. 러시아가 유럽에 천연가스 공급량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발트해를 통과해 독일로 이어지는 신규 천연가스관 '노르트 스트림-2(Nord Stream2)′의 승인을 얻어내기 위해 압박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가스관이 완공되면 유럽 천연가스 연간 수요의 4분의 1에 달하는 연간 550억㎥의 러시아산 천연가스가 독일로 공급된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들은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무기화'한다는 우려가 여전해 우선 석탄 수입을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벌크선 시황이 이처럼 강세를 보이면서 국내 벌크선사들의 실적 전망도 밝은 상황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팬오션(028670)이 올해 3분기 연결기준으로 1391억원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전망했다. 전년 동기보다 121.2% 늘어난 수준이다. 이밖에 대한해운(005880)KSS해운(044450) 등도 흑자 경영을 어이갈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현재 상황이 새로운 슈퍼사이클의 진입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당장 벌크선의 주요 화물인 철광석은 중국의 감산 정책에 따라 해상 운송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과 함께 경기 둔화 가능성도 점쳐진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연말까지는 해상 운임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면서도 "슈퍼사이클처럼 장기 강세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라고 말했다.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는 올해 건화물 물동량을 지난해보다 약 3.6% 증가한 53억5600만톤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기존 전망치보다 0.4%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클락슨리서치는 같은 기간 곡물과 석탄 전망치도 기존보다 각각 1%포인트, 0.7%포인트 내린 3.3%, 4.1% 증가로 하향 조정했다. 자연재해에 따른 피해가 단기적 요인일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한국해양진흥공사도 최근 '건화물선 시장 동향과 전망(2021년 9월)'을 통해 "2008년 슈퍼사이클 시기의 항만 체선은 중국의 급격한 산업화로 원자재 물동량 급증을 기존의 항만 설비가 소화하지 못해 발생한 반면, 현재는 코로나 방역조치로 인한 것"이라며 "과거의 체선은 항만 신규 건설과 확장을 통해 해결할 장기 과제였지만 지금은 단기간 내에 해소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적인 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