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까지 첨단소재 시장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고 밝힌 SK(034730)그룹이 실리콘 카바이드(SiC·탄화규소) 반도체 기판(웨이퍼) 사업에만 7000억원을 투자한다. SiC 웨이퍼로 생산하는 SiC 전력반도체는 열과 전압에 강해 전기차나 5세대(5G) 통신 장비, 태양광 발전기에 주로 쓰이며 성능 향상에 도움을 준다.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반면 공급은 부족한 상황이라 SK의 이번 투자가 시장 선점의 결정타로 작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SK㈜는 최근 세계 1위 첨단소재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2025년까지 5조1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중 SiC 웨이퍼에 7000억원을 투자한다. SiC 전력반도체와 또다른 차세대 반도체인 질화칼륨(GaN) 전력반도체 등에 투자하는 3000억원을 합하면 관련 분야에만 1조원을 투자하는 셈이다. SK㈜는 SiC 웨이퍼 사업에서 올해 300억원 매출을 낼 것으로 예상하는데, 2025년엔 이를 5000억원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역시 지금은 내지 못하고 있지만 2025년엔 2000억원까지 늘리겠다는 목표치를 제시했다.

SK실트론 미국 법인 SK실트론CSS의 연구원이 SiC 웨이퍼를 들고 있다./SK 제공

SiC 웨이퍼는 전기자동차와 5G 네트워크 장비, 태양광 발전기 등에 들어가는 전력반도체의 필수 소재다. 이전까지 주로 쓰이던 실리콘(Si) 웨이퍼보다 전압과 열에 강하고 반도체 칩 크기도 줄일 수 있다. SiC 웨이퍼가 들어간 SiC 반도체는 기존 반도체보다 10배 높은 전압을 견딜 수 있고, 175도까지밖에 견디지 못하는 Si 반도체와 달리 400도에서도 작동한다. 단단한 것은 물론 부피도 10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SK실트론의 SiC 웨이퍼는 전력 손실량을 77% 줄이고 무게와 부피를 40% 개선한 제품이다.

SK㈜와 SK실트론은 전기차용 SiC 시장을 특히 주목하고 있다. 2018년 테슬라가 차업계 최초로 ‘모델 3’에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의 SiC 전력반도체를 탑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장이 열렸다. 이후 2년 만에 20여개 자동차 회사가 SiC 전력반도체를 채택할 정도로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SK㈜는 현재 30% 수준의 전기차 SiC 반도체 채택률이 2025년 60%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며, SiC 웨이퍼 시장 규모 역시 올해 2억1800만달러(약 2564억원)에서 2025년 8억1100만달러(약 9539억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SK㈜는 SiC 웨이퍼 생산능력을 올해 3만장에서 2025년 60만장까지 선제적으로 증설한다는 계획이다. 이 경우 세계 시장점유율은 5%에서 26%까지 늘어날 수 있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SiC 웨이퍼는) 수요 대비 공급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며 “현재 SiC 웨이퍼 시장은 크리(Gree·미국)와 롬(Rohm·미국), 투식스(II-VI·미국) 등이 과점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크리가 SiC 시장의 62%를 차지하고 있다. 업계는 SiC 웨이퍼 시장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고 플레이어도 많지 않다보니 대규모 물량을 따내면 시장점유율 순위가 한순간에 바뀔 수 있다고 보고 있다.

SK그룹은 SiC 웨이퍼와 전력반도체를 차세대 먹거리로 선정하고 수년 전부터 과감한 투자를 단행해왔다. SK실트론은 지난 2019년 미국 듀폰사 SiC 웨이퍼 사업부를 4억5000만달러(약 5294억원)에 인수하며 SiC 웨이퍼 사업에 진출했다. 이어 올해 1월엔 SK㈜가 SiC 전력반도체를 생산하는 국내 기업 예스파워테크닉스에 268억원을 투자해 지분 33.6%를 인수했다. 7월엔 SK실트론의 미국 법인인 SK실트론CSS가 미국 미시간에 3억달러(약 3529억원)를 투자해 SiC 웨이퍼 생산 시설 증설을 결정했다. 설비가 모두 준비되면 생산 능력은 6배가 늘어나게 된다. 이번 7000억원 투자까지 합하면 SK그룹이 SiC 웨이퍼 기술·생산에만 최소 1조6000억원가량을 쏟아부은 셈이다.

선두주자들 역시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1위 업체 크리는 2019년부터 10억달러를 투자해 뉴욕주에 45만㎡ 규모의 SiC 웨이퍼 공장을 짓고 있다. 목표대로 내년부터 가동을 시작한다면 크리의 SiC 웨이퍼 생산능력은 2017년 대비 30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SK실트론 관계자는 “국내 유일의 반도체 웨이퍼 제조기업으로서 전기차 등 차세대 반도체의 수요 증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한편, 신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지속적인 투자 확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