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가 급증하는 추석 성수기를 앞두고 종이박스를 만드는 데 쓰이는 골판지 원지 제조업체들이 일제히 가격 인상에 나섰다. 지난해 말 이후 원지값이 세 차례나 오르자 골판지 및 종이박스 제조업체는 인상률이 과도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16일 제지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골판지 기업인 아세아제지(002310)와 한솔페이퍼텍은 최근 골판지원지 가격을 전월(8월) 대비 톤(t)당 5만~7만원 인상하기로 했다. 대림제지(017650)와 경산제지 역시 지난달 t당 6만원 정도의 인상안을 거래처에 통보했다. 태림페이퍼와 아진피앤피, 전주페이퍼 등 다른 원지업체들도 8~9월 가격을 10% 정도 인상했다.
태림, 아세아제지와 더불어 국내 3대 골판지 업체인 신대양제지(016590)와 계열사인 대양제지는 아직 가격 인상안을 통보하진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이들 기업도 조만간 가격을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골판지 원지 가격은 지난해 10월 연간 원지 생산량의 7%를 담당하는 대양제지 안산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이후 세 차례 올랐다. 업체별로 요구한 가격 인상 폭은 차이가 있지만, 지난해 10월엔 약 25% 올랐고 올해 3월에도 12~15%가량이 인상됐다. 화재 직후 골판지 원지가 부족했던 데다가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택배 및 배달이 급증해 종이 상자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골판지 원지 생산 업체들은 이번 원지값 인상의 이유로 주재료인 폐지 물량 감소와 이로 인한 가격 상승 등을 꼽았다. 폐지는 골판지 원지·백판지 등 산업용지를 비롯해 신문용지(인쇄용지)와 화장지(위생용지) 등에 골고루 쓰이는 주원료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달 폐지(폐골판지)의 전국 평균 가격은 ㎏당 141.8원으로 전년 동기(64.6원)보다 약 119% 올랐다.
그러나 원지를 받아 종이박스를 만드는 관련 업체들은 가격 인상이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골판지 업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아세아그룹, 대양그룹, 태림그룹 등은 ‘일관업계’로, ‘원지→원단→박스’ 등 3단계 공정 과정을 수직화된 계열사를 통해 한 번에 진행한다. 이와 달리 원지 생산업체로부터 원지를 공급받아 골판지나 골판지상자 등을 생산하는 전문 골판지포장 기업들은 대부분 중소형 업체로, 원지값 인상의 타격을 그대로 받는다.
종이박스 관련 업체들은 원지업계가 주장하는 가격 상승 요인은 이미 앞선 두 차례 원지값 인상에 포함됐고, 이에 따라 원지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아세아제지는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87.3% 증가한 292억6005만원을 기록했다. 대림제지도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29.6% 늘어났다. 두 차례 원지 가격 상승분이 반영된 올 상반기로 범위를 늘리면, 두 기업의 영업이익 증가율은 각각 91.1%, 97.5%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영세한 전문 포장기업들이 추석을 앞두고 대규모 택배 물량을 발주하는 대기업을 상대로 원지 가격 인상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해달라고 요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골판지 원지의 주재료인 폐지 수급을 원활히 하거나, 원지 가격 인상분을 지원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