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지난달 출소한 이후 '잠행모드'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잇따라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를 지지하는 발언을 내놓고 있지만, 취업제한이 완전히 풀리지 않으면 적극적인 현장 경영이 재벌 특혜 논란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민단체들이 이 부회장을 취업제한 규정 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등 논란이 진행 중이라 공식 현장 행보까지는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1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지난달 13일 출소 직후 삼성전자 서초 사옥에서 경영진과 만난 이후 이렇다할 경영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19일과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과 회계부정 관련 재판에 출석한 것과 26일 고(故) 고계현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위원 빈소를 찾은 것이 공개된 동선의 전부다. 이 부회장은 현재 서초 사옥과 삼성전자 수원 본사를 수시로 방문해 사업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했다./연합뉴스

당초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출소 후 건강을 추스른 뒤 적극적인 현장 경영에 나설 것으로 예측해왔다. 정부가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결정한 이유로 경제 회복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특사로서의 필요성을 언급한만큼, 반도체나 바이오 관련 사업장을 찾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실제 이 부회장은 지난달 24일 240조원 규모의 대대적인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하며 정부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러나 현장 경영만큼은 신중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 부회장은 가석방 신분인만큼 남은 형기동안 보호관찰을 받고 5년간 취업제한 적용을 받는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직접 "이 부회장은 몇년째 무보수이고 비상임, 미등기 임원이라 취업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고, 김부겸 국무총리도 "이미 석방된 상황에서 활동을 금지하는 것은 적절한 방안이 아니다"라며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에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무보수 미등기 임원 신분이라 할지라도 가석방 상태에서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취업제한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7개 단체는 서울중앙지검에 이 부회장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 부회장은 출소 직후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도착해 경영 현안을 보고받고, 지난달 24일엔 삼성그룹 투자·고용 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삼성전자에 취업한 것"이라며 "이 부회장을 취업제한 위반으로 처벌하지 않는다면 이 규정은 그 누구에게도 적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이 이러한 논란을 피하고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한동안 '정중동(靜中動)' 행보를 보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8년 3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풀려났을 때도 한 달 넘게 외부 일정을 갖지 않다가 45일 만에 첫 공식 일정으로 유럽 출장을 떠난 바 있다.

이 부회장이 매년 명절에 해외 사업장 점검이나 주요 거래처 만남을 위해 해외 출장에 나선 만큼, 이달 추석 연휴에도 해외 출장길에 오를 것이란 전망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일자리 창출과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놨으니 이제는 백신 확보를 위해 움직일 가능성이 커보인다"며 "백신의 경우 해외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대규모 물량을 확보해야 하는 만큼 준비에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