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일본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수출 규제는 한국에서 소부장 리더 육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다. 글로벌 공급망에 타격을 입히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도 한국 소부장 산업을 키울 계기를 제공한다. 독일·일본 등 제조업 강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소부장 경쟁력은 국제무대에서 명함을 내밀기에 아직 역부족이다. 우리는 무엇을 더 해야 할까. ‘이코노미조선’이 소부장 강소 기업의 조건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2001년 대전에서 문을 연 디엔에프는 반도체 핵심 소재인 전구체(반도체 회로 형성 시 화학 반응에 사용하는 물질) 개발사다. 최근 삼성전자가 이 회사에 210억원을 투자하고 2대 주주에 올라 화제를 모았다. 디엔에프는 2년 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가 촉발한 기술 국산화 노력의 선두주자 중 한 곳이다. DIPAS, High-k 등 주력 소재를 국산화해 작년 한 해에만 460억원의 수입 대체 효과를 얻었다. 매출액은 2019년 588억원에서 2020년 832억원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52억원에서 13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8월 11일 대전 디엔에프 본사에서 창업자인 김명운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김명운 디엔에프 CEO. 카이스트(KAIST) 화학 박사 / 전준범 기자

반도체 소재 국산화의 의미는

”소재 국산화를 비용 절감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더 큰 가치는 기술 독립이다. 그간 국내 반도체 대기업들이 외국산 소재·부품을 가져다 쓴 건 쉽게 구할 수 있어서였다. 기술 선진국에서 이미 만들어 팔고 있으니까. 국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들은 후발주자라 기회가 적었을 뿐이지 실력은 충분했다. 2000년대 들어 이대로 가면 기술 종속이 심해지겠다는 위기감이 커졌고, 기술 독립 시도가 본격화됐다.”

분업 시대인데 기술 독립을 꼭 해야 하나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가 트리거(방아쇠)로 작용했지만, 신경전은 늘 있었다. 재료 좀 빨리 달라고 하는데 천천히 준다든지, 자국 기업부터 주는 식으로 말이다. 끌려다니다 보면 완제품 속도전에서 밀린다. 국산화는 스피드의 문제다. 대기업도 예전에는 파는 게 우선이었다면, 이제는 미래를 보고 국내 소부장 기업을 동반자로 육성한다.”

삼성전자의 동반자다

”삼성전자는 일찍부터 똘똘한 중소기업을 찾아다녔다. 우리와 연을 맺은 건 2005년 반도체 미세화 핵심 소재를 함께 개발하면서다. 지금도 삼성전자와 공동 연구 중인 제품이 많다. 반도체가 점점 미세화되고 있다. 신규 소재 개발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삼성전자는 디엔에프의 어떤 점을 좋게 봤나

”연구개발(R&D)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게 우리의 장점이다. 매출액의 8~12%를 R&D에 투자한다. 언제나 일순위다. 석박사급 연구 인력이 임직원의 20% 이상이다. 회사가 보유한 반도체 소재 관련 국내외 특허는 90여 건에 이른다. 이를 토대로 고객사(삼성전자)에 좋은 아이디어를 빠르게 줄 수 있다. 강소 기업의 자존심은 R&D에서 나온다.”

디엔에프 연구원들이 회사 클린룸에서 실리콘 웨이퍼를 점검하고 있다. / 디엔에프

고급 인력 수급에 어려움은 없나

”전구체 영역에서는 디엔에프가 선도 기업이다. 오히려 우리 회사로 오려고 하지.”

정부는 어떤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할까

”현재 소부장 국산화 정책은 주로 돈을 주거나 프로젝트를 주는 식이다. 이것도 좋지만, 지속 가능한 국산화를 위해서는 우리 같은 공급 업체보다 삼성전자 같은 수요 업체의 관심을 유도하는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가령 소부장 국산화율을 높이는 대기업에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식으로 말이다.”

앞으로 계획은

”삼성전자에서 투자받은 돈(210억원)으로 기존 생산 라인을 늘리고 신소재 생산 라인도 깔 것이다. 이미 시설 설계에 착수했다. 내년 상반기면 완공될 것이다. 현재의 생산 능력으로는 빠르게 늘어나는 수주 물량을 감당하기 어렵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R&D 투자도 강화할 것이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반도체 소재 영역의 글로벌 리딩 컴퍼니다.”

대전=전준범 이코노미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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