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096770)이 배터리 사업 분사에 불만을 제기하는 주주를 달래기 위해 자사주나 SK아이이테크놀로지(361610), 신생 배터리 자회사 등 보유 주식 일부를 주주에 배당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금이 아닌 주식을 배당하는 것은 국내에선 다소 생소한 방식이다. SK이노베이션은 보유 현금이 부족한 데다 그나마 있는 현금성 자산도 신설 배터리 회사에 대부분 넘기는 상황이라 주식 배당 카드를 꺼낸 것으로 풀이된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다음달 16일 배터리 사업과 E&P(석유개발) 사업 분사를 결정하는 주주총회에서 이익배당 관련 정관 변경 안건을 함께 상정한다. 구체적인 안건은 ▲이익의 배당은 금전, 주식 및 기타의 재산으로 할 수 있다 ▲회사가 금전 외의 재산으로 배당하는 경우 회사는 일정 수 미만의 주식을 보유한 주주에게 금전 외의 재산 대신 금전으로 지급할 수 있다 ▲회사는 7월 1일 0시 현재의 주주에게 상법의 규정에 의한 중간배당을 할 수 있다. 중간배당은 금전, 주식 및 기타의 재산으로 할 수 있다 등의 내용을 정관에 반영하는 내용이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은 주식 배당 가능성에 대해 “주주 환원 방안을 놓고 계속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으나 현재 결정된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시장에서는 정관 변경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라 주식 배당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SK이노베이션 10주당 SK배터리회사(가칭) 1주를 배당하고, 10주 미만 주식을 보유한 주주에게는 보유 주식만큼 현금을 배당하는 식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신생 배터리 회사 주식 배당 비율이 달리질 수 있겠지만, 정관 변경 내용만 봤을 때 이런 방식이 가장 유력하다”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의 신주를 발행해 기존 주주에게 배당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또 SKIET의 지분도 61% 보유하고 있어 주식 배당에 활용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주식 배당을 검토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우선 배터리 사업 분할로 기존 투자자들의 불만이 거세지자 이를 달래기 위한 목적이다. SK이노베이션 주가는 지난 27일 23만9500원으로 마감했다. 지난 7월 1일 배터리 사업부문 분할을 발표한 이후 두 달여 동안 18.95% 하락했다. 물적분할의 특성상 기존 주주들은 신설 배터리회사의 주식을 받을 수 없는데, 이 때문에 주주들 사이에서는 “배터리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했는데 뒤통수를 맞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주주 사이에서는 “주총에서 분할 안건에 반대표를 던지자”, “집단소송을 제기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현금성 자산이 부족한 SK이노베이션의 재무구조상 주식 배당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분석도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전체 자산 18조5000억원 중 25%인 4조6000억원을 신설 배터리 회사에 몰아준다. 현금성 자산도 전체 5000억원 중 73%(3770억원)를 주지만, 장기차입금은 2조2000억원 중 31%(7000억원)만 이전한다.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자산은 줄고 부채는 그대로 남아 현금을 배당할 여력이 남지 않는다. SK이노베이션은 주력 사업이던 정유 부문이 코로나19로 지난해 2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하면서 현재 배당을 중단한 상태다.

울산광역시 남구 고사동에 위치한 SK이노베이션 울산 콤플렉스 전경./SK이노베이션 제공

LG화학(051910)도 지난해 10월 배터리 부문(현 LG에너지솔루션)을 분할하기로 했을 때 주주들이 반발하자 ‘배당 성향 30% 이상, 2022년까지 보통주 1주당 최소 1만원 이상 현금 배당’이라는 주주 환원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시장 일각에서는 SK이노베이션의 주식 배당에 대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SK배터리 분사 후 이 회사의 지분 100%를 보유하게 되고, 나중에 일반공모 방식으로 SK배터리회사의 기업공개(IPO)를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회사 지분을 주주에 배당하면 배터리 회사 지분 상당 수를 주주에게 주게 되고, 신생 회사를 기업공개할 때 지분 가치가 희석되는 두 번의 손실이 발생한다. 투자금 확보가 시급한 SK이노베이션이 주주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준의 배당을 할지도 의문이다.

자사주의 경우 지분율(10%)이 낮아 주식 배당으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유상증자로 신주를 발행해 배당하는 방안이 있지만, 배터리 분사로 반발하는 소액 주주들을 달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내부에서도 나온다. 이에 SKIET 주식을 배당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 애널리스트는 “다음달 16일 주총 때 어떤 주주 가치 제고 정책을 발표할지 지켜봐야겠지만, 자금이 부족해 배터리 부문을 분사하는 입장에서 주주에게 주식을 충분히 배당할 여력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