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003490)이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와 자회사인 왕산레저개발 매각에 속도를 붙이면서 이르면 연내 6000억원 안팎의 유동성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020560) 인수 지원을 받은 산업은행으로부터 매년 경영평가를 받아야 하는 만큼, 이번 재무구조 개선으로 당분간 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서울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대한항공이 소유한 종로구 송현동 땅과의 맞교환 대상으로 강남구 삼성동 옛 서울의료원 남측 부지를 선정했다. 송현동 땅의 감정 평가가 완료되는 대로, 서울시는 이에 상응하는 면적을 분할해 LH에 양도하고 그 대금을 대한항공에 지급할 계획이다. 서울시의회 의결 등을 거쳐 교환 계약은 올해 11월에 이뤄질 전망이다. 체결일로부터 두 달 내 매각 대금 85%를 지급하고 나머지 15%는 소유권 이전 시 지급하게 돼 있어 이르면 연내 대한항공이 매각 대금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서울시 종로구 송현동 대한항공 부지. /조선DB

대한항공은 송현동 부지 매각을 통해 5000억원 안팎의 대금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 당초 대한항공은 최소 5000억원에 매각할 계획이었고 서울시는 4671억원으로 보상금액을 산정한 바 있다. 공시지가 등을 고려할 때 최종가격은 두 액수 사이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평가다.

대한항공이 작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왕산레저개발 매각 작업도 현재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왕산레저개발은 해양레저시설 왕산마리나의 운영사업자로 대한항공이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다. 현재 부동산 전문 자산운용사인 칸서스자산운용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매각 작업을 진행 중이다. 대한항공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지난 12일 이사회를 열고 왕산레저개발 지분 전량에 대한 매각 계약 체결 계획을 논의했다. 추가 이사회를 통해 매각계약을 체결할 예정인데, 매각대금은 1300억원가량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는 대로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윌셔그랜드호텔의 지분 매각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당초 지난해 미국 투자자에게 윌셔그랜드호텔을 운영하는 한진인터내셔널의 지분 일부를 매각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에 따른 호텔·오피스업 불황으로 협의를 중단한 상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는 등 지분 매각 조건이 유리한 시점에 재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윌셔그랜드호텔 전경. /대한항공 제공

대한항공이 유휴자산과 비주력 사업체를 매각하는 이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대비하고 아시아나항공 인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대한항공은 지난해에도 기내식·기내면세점 사업을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매각해 7900억원을 확보했다. 송현동 부지와 왕산레저개발 매각 작업이 완료될 경우 총 1조40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대한항공은 대규모 유동성을 확보함으로써 산업은행과 맺은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일부 지킬 수 있게 됐다. 산업은행은 올해 3월 아시아나항공 통합 계획 이행 및 경영 전반을 평가하겠다는 명목으로 일명 ‘경영평가위원회’를 세우고 매년 대한항공의 경영 성과를 평가할 계획이다. 올해 연말쯤 첫 경영 성과 평가가 이뤄질 전망이다. 경영평가 등급이 저조할 경우 경영진 교체·해임 등의 조치가 가능한 만큼, 대한항공은 재무구조 개선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여객 사업 부진에도 화물 사업 확대를 통해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반기순이익은 607억원으로 619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던 작년 상반기 대비 흑자로 전환했다. 부채비율은 작년 상반기말 661%에서 1년 만에 293%로 줄였고, 단기채무 상환 능력을 보여주는 유동비율은 48%에서 76.2%로 대폭 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