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효성그룹 일부 부서에선 실무 회의를 3차원 가상 공간 메타버스에서 진행한다. 네이버(NAVER(035420))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 이뤄지는데, 사원부터 임원까지 모두가 3D 아바타를 만들고 가상공간 속 회의실에서 회의를 진행하는 식이다. 재계에 따르면 메타버스 회의는 그룹의 새로운 먹거리로 이어질 수 있는 신기술에 익숙해지라는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의 의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섬유, 화학, 중공업 등 ‘굴뚝 산업’에 주력해왔던 효성그룹이 미래 먹거리로 메타버스, 가상자산, 블록체인에 주목하고 있다. 그룹 내 핵심 계열사인 갤럭시아머니트리(094480)를 중심으로 기존 전자 결제대행(PG) 서비스를 넘어 메타버스와 블록체인 기반의 핀테크 기업으로 보폭을 넓혀가겠다는 전략이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연합뉴스

25일 효성그룹에 따르면 갤럭시아머니트리는 지난 5월 21일 ‘갤럭시아메타버스’란 이름의 자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메타버스 등 관련 신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효성 관계자는 “메타버스 뿐 아니라 NFT(대체불가토큰), STO(증권형토큰공개) 등 블록체인 사업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갤럭시아머니트리는 기존 핀테크 사업에 집중하고, 갤럭시아메타버스는 신사업에 집중함으로써 각사의 전문성을 살리겠다는 게 효성의 설명이다.

효성이 블록체인 등 신사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가상화폐가 크게 주목받기 시작한 2017년 이전부터였다. 2015년 블록체인 기술기업 코인플러그와 함께 국내 최초로 비트코인 선불카드인 ‘오케이 비트카드’를 출시한 데 이어 2017년엔 블록체인 기반의 저작권 관리시스템 ‘코인뷰’를 내놨다. 지난해에는 암호화폐 ‘좁쌀(XTL)’을 발행해 암호화폐 거래소 고팍스에 상장시켰다.

올해 3월 갤럭시아머니트리는 사업 목적에 ▲암호화 자산 매매 및 중개업 ▲미술품, 귀중품 등의 판매 중개업 등을 추가하면서 NFT 사업에도 발을 들였다.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무한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파일에 유일성을 부여하는 일종의 ‘디지털 인증서’를 말한다. 현재 갤럭시아메타버스는 대한민국배구협회와 제휴 계약을 맺고 협회가 보유한 배구 국가대표 관련 콘텐츠를 NFT로 기획해 거래하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효성 관계자는 “현재 디지털 아트와 셀럽(유명인사) 등을 차별화한 NFT를 발행하고 거래하는 플랫폼 사업을 추진 중”이라며 “향후 이를 기반으로 메타버스 분야까지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가령 김연경 선수를 포함한 대한민국 간판 남녀 국가대표 배구 스타들의 아바타를 메타버스 가상 세계 속에서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왼쪽부터) 신동훈 갤럭시아메타버스 대표이사 오한남 대한민국배구협회장, 이반석 갤럭시아에스엠 대표이사. /효성그룹 제공

재계에 따르면 효성이 신사업에 진출한 배경에는 조현준 회장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급변하는 싱귤래리티(Singularity) 시대의 도래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고, 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생존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싱귤래리티 시대란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 결합이 가져올 미래를 말한다. 조 회장은 지난 5월 갤럭시아머니트리 주식 25억원 어치를 장외 매수해 지분을 32.98%로 높인 상태다.

메타버스, NFT 등 신사업의 중책을 맡은 인물만 봐도 조 회장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현재 갤럭시아머니트리와 갤럭시아메타버스의 대표이사는 신동훈 전무 겸 최고운영책임자(COO)가 맡고 있다. 신 대표는 고려대를 졸업한 뒤 카이스트대학원 금융공학과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삼성카드(029780)에서 약 25년 동안 디지털마케팅 사업부를 이끌어오다 지난해 6월 갤럭시아머니트리의 전무 겸 COO로 부임해 결제사업과 온·오프라인 연계(O2O) 비즈니스 등을 총괄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수십년간 영위하던 굴뚝사업과 별개로 메타버스 같은 신사업에 진출하겠다는 것은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찾겠다는 오너의 의지가 강하다는 방증”이라며 “아직 시장이 초기 단계인 만큼 관련 전문 업체와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갈 경우 성장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