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003490)이 보유한 세계 최대 여객기 A380의 운항을 5년 내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항공업계는 대한항공이 운영 비용이 많이 들어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한 초대형기를 정리함으로써 기단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분석했다.

20일 항공 전문 매체 플라이트글로벌에 따르면 조원태 회장은 최근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A380은 5년 내 대한항공을 떠날 예정"이라며 "B747-8I도 10년 내 그 뒤를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A380과 B747-8I는 각각 에어버스와 보잉을 대표하는 초대형 여객기다. 2층 구조 객실의 A380은 운용 좌석만 407석에 달하고 747-8I도 앞부분 절반이 2층 구조로 돼있어 총 368석의 좌석을 보유하고 있다. 거대한 크기에 맞게 각각 '하늘을 나는 호텔' '하늘의 여왕'이란 별칭이 붙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선DB

조 회장은 인터뷰에서 대한항공이 보유한 가장 큰 여객기들을 퇴역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항공업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경영 여건이 악화하면서 운영 비용이 큰 초대형 여객기를 정리하려는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A380과 같은 대형 여객기는 한번에 400명 이상의 승객을 태울 수 있어 수익성이 좋지만, 반대로 승객이 없으면 유류비나 각종 운영비 등에서 큰 손해가 발생한다. 이번 기회에 초대형기를 빼고 300∼400명 규모의 중·대형기 위주로 기단을 재편하겠다는 포석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국토교통부 항공안전관리시스템(ATIS)에 따르면 현재 대한항공은 A380과 B747-8I를 각각 10대씩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A380 8대와 B747-8I 8대는 금융리스(임구) 방식으로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코로나19로 국제선 하늘길이 막히면서 1~2대를 제외한 나머지 여객기들은 모두 운항하고 있지 않은 상태다.

문제는 여객기가 운항을 멈춘 기간에도 막대한 금융리스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이다. A380과 같은 초대형 여객기는 월 리스료만 수십억원에 달한다. 여객기를 공항에 세워두는 일종의 주차료인 '정류료'도 만만치 않다. 항공기 무게에 따라 정류료를 지급하는데, A380처럼 500t이 넘는 초대형 여객기의 경우 하루 정류료만 240만원에 달한다. A380 10대를 보유한 대한항공의 경우 정류료로만 매달 7억3000만원을 내야하는 셈이다.

대한항공 A380 여객기를 세척하는 모습. /대한항공 제공

초대형기 퇴역은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초대형기를 활용해 최대한 많은 승객을 허브 공항으로 수송한 뒤 인근 서브공항으로 환승시키는 '허브 앤 스포크(Hub and Spoke)' 전략이 대세였다. 그러나 최근엔 환승 없이 공항에서 공항으로 이동하는 '포인트 투 포인트(Point to Point)' 전략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탑승률이 낮아진 초대형 여객기를 퇴출하는 항공사가 늘고 있다. 이미 루프트한자, 에어프랑스, 싱가포르항공 등은 A380 운항을 영구 중단하고 중형기로 기단을 재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020560)과의 통합도 앞두고 있어 기단 재편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A380은 6대로, 통합 이후 대한항공이 보유하게 될 A380은 총 16대로 늘어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의 리스 여객기 비중이 높은 탓에 통합 이후 계약 연장 없이 반납하는 방식으로 기단을 축소할 전망"이라며 "A380과 같은 '돈 먹는 하마'는 줄이고 연료 효율이 높은 중대형기로 기단을 꾸려나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항공업계에서는 B787이 A380과 B747-8I를 대체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한항공은 2019년 B787-10 20대와 B787-9 10대를 추가 도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B787은 좌석 수가 269석으로 초대형기에 비해선 좌석 수가 적지만, 동급 기종 대비 좌석당 연료 효율이 20~25% 높고, 이산화탄소 및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20% 적은 친환경 항공기로 평가받는다. 대한항공은 지난달 ESG채권 발행으로 조달한 3500억원도 B787 등 친환경 기종을 도입하는 데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한항공 B747-8I 여객기 모습. /대한항공 제공

한편 조 회장은 이번 인터뷰에서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조 회장은 "연말쯤 경쟁 당국의 승인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한다"라며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 LCC도 함께 인수하면서 대한항공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