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상승으로 해양플랜트(시추설비) 발주가 본격화하면서 강관 제조 중견기업 성광벤드(014620)태광(023160)이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저유가에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암울했던 해양플랜트 시장이 10년 전 ‘황금기’를 다시 누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17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성광벤드의 영업이익 전망치는 6억원으로 작년 3분기 대비 흑자 전환에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매출액은 436억원으로 작년 대비 12.75% 늘어날 전망이다. 태광도 올 3분기에 작년 대비 32% 개선된 24억원의 영업이익과 14.94% 늘어난 510억원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관측된다.

태광이 생산한 T 모양의 파이프 연결관이음쇠. /태광 제공

성광벤드와 태광의 실적이 올해 3분기부터 개선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는 국내 조선사들이 잇따라 해양플랜트를 수주하기 시작하면서 두 회사도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성광벤드와 태광은 ‘피팅(Fitting)’이라는 산업용 관이음쇠를 생산한다. 피팅은 석유·화학·해양플랜트와 선박 내부에 탑재되는 거대한 배관의 방향을 바꾸거나 곡선으로 연결한 이음매 부분에 들어가는 핵심 자재다. 증기, 물, 기름, 공기 등 운반 물질의 특성에 맞는 제조 공정이 필요해 진입 장벽이 높다. 국내에선 성광벤드와 태광이 각각 59%, 41%씩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2011부터 2013년까지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상회하며 해양플랜트 발주가 쏟아졌을 당시 피팅업계는 최고의 호황을 맞았다. 해양플랜트 전체 프로젝트에서 피팅 물량이 차지하는 비율은 2% 이상이다. 해양플랜트 가격이 1척당 1조~2조원에 달하는 점을 고려할 때, 국내 조선사들이 해외에서 해양플랜트 1척을 수주할 때마다 국내 피팅업계에 떨어지는 발주 규모는 최소 200억원이다. 당시 국내 조선사들은 인건비는 비싸도 원활한 소통과 납기를 잘 맞추는 성광벤드와 태광에 피팅 물량을 대거 발주했다. 2012년 성광벤드가 전년 대비 147% 오른 763억원의 영업이익을, 태광이 26% 오른 46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하지만 2014년 유가가 폭락한 뒤 저유가 기조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두 회사는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엔 코로나19 사태까지 덮쳤다. 해양플랜트 시장은 물론 피팅업계도 실적이 바닥을 쳤다. 성광벤드의 연간 수주액은 2012년 4310억원에서 2020년 149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태광의 연간 수주액은 3500억원에서 2200억원으로 줄었다. 지난해 성광벤드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6분의 1로 줄어든 11억원을 기록했고 태광은 3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적자로 전환했다.

지난 6월 현대중공업에서 열린 킹스키(King's Quay) 해양플랜트 출항식 모습. /현대중공업그룹 제공

다행히 최근 국제 유가가 오름세를 보이면서 해양플랜트 수주 훈풍이 불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 12일 기준 배럴당 70.52달러를 기록했다. 43.63달러였던 작년 8월 12일 대비 약 62% 올랐다. 같은 기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62% 오른 69.09달러, 브렌트유는 57% 오른 71.31달러로 집계됐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50~70달러가 넘으면 해양플랜트의 채산성이 보장돼 발주로 이어질 수 있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이달 초까지 국내 대형 조선사들이 수주한 해양플랜트의 규모는 4조원에 달한다. 한국조선해양은 올해에만 총 2조100억원 규모의 해양설비 3기를 수주했고 대우조선해양은 총 1조8000억원 규모의 해양설비 2건을 수주했다. 올해 하반기에도 사업 규모만 1조3600억원에 달하는 나이지리아 봉가 사우스 웨스트 아파로(BSWA) 프로젝트에서 해양플랜트 발주가 나올 전망이다. 발주 규모가 1조원을 넘길 것으로 추정되는 노르웨이 국영석유회사 에퀴노르의 해양플랜트 입찰도 연내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통상 조선사들은 해양플랜트를 수주한 뒤 6~9개월부터 강관 발주를 시작한다. 이르면 연말부터 조선사의 피팅 물량 발주가 시작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태환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조선사들의 해양플랜트 수주가 늘면서 (두 회사의) 내년 전망은 밝은 편”이라고 말했다. 태광 관계자는 “해양플랜트 발주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해 자체적으로 후판 재고를 비축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