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에 이어 NFT(Non-fungible Token·대체불가능토큰)가 엔터테인먼트업계에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NFT는 블록체인(가상화폐로 거래할 때 해킹을 막기 위한 기술)을 이용해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음악·영상·그림 같은 디지털 파일에 고유의 식별 정보를 부여하는 꼬리표를 달아 고유성과 희소성을 지니는 일종의 신종 디지털 자산인 셈이다. 보통 암호화폐(가상화폐)의 일종인 이더리움으로 거래된다.

매드몬스터(왼쪽)와 브레이브걸스. /업비트 제공

16일 엔터테인먼트업계에 따르면 K팝 아티스트 개개인은 물론 대형 기획사들이 잇달아 NFT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가수 세븐은 최근 2년 5개월 만에 신곡 '모나리자'를 발매했다. 그러나 이번 신곡은 주요 음원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없다. NFT음원으로 발매해 단 한 사람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나리자는 최저 가격 1000만원으로 경매를 진행해 지난 13일 마감했다. 낙찰 금액은 비공개다. 낙찰자에겐 음원 스트리밍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제작자의 디지털 권리를 양도해준다.

국내 4대 기획사 중 하나인 JYP엔터테인먼트(JYP)는 지난달 블록체인 업체 두나무와 K팝 NFT 플랫폼 사업을 위한 업무 제휴를 맺었다. JYP엔터 최대 주주인 박진영 대표 프로듀서는 자신이 보유한 지분 2.5%를 두나무에 매각하기도 했다. 현재 JYP엔터에는 2PM, 트와이스, 있지(ITZY) 등이 소속돼 있는데, 이들 아티스트의 앨범·굿즈(기획상품)가 NFT화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두나무는 최근 브레이브걸스의 신곡 일러스트와 매드몬스터 재발매 싱글 특별 영상 등 최근 인기 있는 K팝 아티스트와 관련된 NFT를 발행했다. 한국관광공사 광고로 주목을 받은 밴드 이날치의 히트곡 '범 내려온다' 역시 NFT로 발매됐으며, 선미, 어반자카파 등이 소속된 어비스컴퍼니도 NFT 플랫폼 디파인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크리스티 경매에서 785억원에 낙찰된 비플의 작품(왼쪽)과 국내 첫 NFT 미술품 경매에서 6억원에 낙찰된 마리킴의 'Missing and found' /크리스티, 피카프로젝트 캡처

엔터테인먼트업계가 NFT에 주목하는 이유는 NFT가 갖는 고유성과 희소성의 가치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음악은 디지털 음원 스트리밍이 보편화하면서 CD 등 실물 음반을 사서 음악을 '갖는' 것이 아닌 불특정 다수가 '공유'하는 개념으로 통했다. 그러나 소유권과 판매 이력 등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 위조가 불가능하고, 고유의 인식값이 있어 교환이 불가능한 NFT가 등장하면서 음악이 다시 소장 가능한 자산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NFT의 특성은 팬덤을 기반으로 하는 K팝 업계의 특성상 수익을 내기 적합한 구조를 갖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NFT를 통해 한정판 콘텐츠를 만들면 팬들이 비싼 가격을 주더라도 구매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앞다퉈 뛰어들고 있는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도 NFT 적용이 가능해 이 안에서 앨범·콘서트 티켓을 사고파는 일이 일반화될 가능성도 있다.

엔터테인먼트업계 관계자는 "NFT로 만들 수 있는 콘텐츠에는 이론적으로 한계가 없기에 음악뿐만 아니라 포토카드 등 초상권 관련 콘텐츠, 나아가 스타의 각종 기록과 흔적도 자산으로 만들 수 있다"며 "특히 팬은 한정판에 약한데 NFT 굿즈를 구입하면 소유권도 증명할 수 있고, 이를 나중에 재판매할 수도 있어 수익성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지난 1일 유튜브로 중계한 2021 세계문화산업포럼(WCIF)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K팝 아티스트들에게도 NFT 발행이 유리하다. 아티스트가 자신의 음원이나 굿즈를 NFT로 제작해 판매하게 되면, 중개자 없이 수익을 직접 가져갈 수 있다. 실제로 그래미상을 받은 미국 록밴드 킹스 오브 리온은 NFT 신작 앨범을 내 2주 만에 200만달러(약 23억원)의 이익을 거뒀다. 팝 가수 위켄드와 3LAU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DJ 저스틴 블라우는 미공개 음악이 포함된 앨범을 NFT를 적용해 판매했고, 각각 229만달러(약 26억원)와 1700만달러(약 198억원)를 벌어들였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대면 공연을 열지 못한 아티스트들에게 새로운 수익 활로가 열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MRC 데이터는 지난달 공개한 미국 음반시장 상반기 보고서에서 "NFT는 아티스트들이 음악과 아트워크를 유통하는 새로운 수익원이 되고 있다"고 했다.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041510))의 창립자이자 최대 주주인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는 최근 열린 '제2회 세계문화산업포럼'(WCIF)에서 "블록체인 시대, NFT로 알 수 있듯이 미래에는 콘텐츠가 재화나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나치게 높은 가격대와 무리한 수익화로 번질 가능성은 우려 요소로 꼽힌다. 한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NFT 가치가 불확실한 상황이라 기존 팬덤 정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사업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K팝 아티스트의 사생활 침해나 초상권 문제 등 앞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