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기업들이 MZ세대(밀레니얼와 Z세대를 아우르는 말·198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 직원과의 소통 창구를 늘리는데 힘을 쏟고 있다. 디지털 전환 등 변화의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MZ세대 직원을 비롯한 고객의 수요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이다.

◇ 구찌도 효과 본 '리버스 멘토링'… 저연차 직원이 경영진에 조언

14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이 MZ세대와의 소통을 늘리는 대표적인 방안으로 '리버스(reverse·뒤집다) 멘토링'을 주목하고 있다.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는 기존 멘토링의 반대 개념인 리버스 멘토링은 젊은 사원이나 대리급이 고위 경영진을 지도·조언하는 제도다.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잭 웰치 전(前)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이 1990년대 후반 "후배에게 직접 인터넷 사용법을 배우며 멘토를 삼으라"고 지시한 것이 시초로 꼽힌다. 낡은 이미지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겪던 명품 브랜드 구찌(Gucci)는 이 제도를 도입해 3년 만에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2배, 3배 이상 증가하는 등 반등에 성공하기도 했다. 구찌는 2012년부터 3년간 매출이 정체되고 영업이익이 급감했는데, 2015년 마르코 비자리(Marco Bizzarri)가 새로운 CEO로 취임한 이후 리버스 멘토링 등을 시행했다.

LIG넥스원 판교R&D센터에서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 프로그램에 참여한 김지찬 대표이사와 임직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LIG넥스원 제공

국내에서도 최근 들어 많은 기업이 리버스 멘토링을 도입하고 있다. LG유플러스(032640)LG이노텍(011070)LG(003550)그룹 계열사는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하현회 전 부회장을 비롯해 각 부문 임원 10명이 신입사원 20명으로부터 코치를 받았다. 신입사원들은 'MZ세대 언어와 소통방법', '요즘 세대 직업관과 회사 제도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 등 직접 관심사를 선정했다. LG이노텍도 '밀레니얼 세대의 소통방식과 여가문화', '밀레니얼 세대가 꿈꾸는 일하는 방식' 등 다양한 주제로 리버스 멘토링을 진행 중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047050)은 국내 종합무역상사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7월부터 '포인터 리버스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내 9개 사업실을 대상으로 MZ세대 저연차 직원과 실장급 임원이 한 팀이 돼 트렌트 체험 등 MZ세대의 멘토링을 받았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 동안 1~2년 차 신입사원과 대리급 직원이 임원진에 조언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잠시 멈췄지만, 오일뱅크는 참여 직군과 인원을 확대해 체계적인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보수적인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는 방산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LIG넥스원(079550)은 김지찬 대표가 직접 나서 리버스 멘토링을 시행하고 있다. MZ세대 직원 멘토 2~3인이 김지찬 대표를 포함한 주요 경영임원 5명 각 1명씩과 조를 구성해 최소 월 1회 이상 멘토링을 진행하는 구조다. 가상현실(VR)·디지털 기기 등 최신 IT 트렌드 체험, 소셜미디어(SNS) 제작 및 운영, 성수동·홍대 등 핫플레이스 방문과 같은 활동이 주를 이룬다.

포스코인터내셔널 '리버스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한 임원 및 신입 직원들이 '셀카'를 찍어 팀별 소셜미디어(SNS) 인스타그램에 올린 모습. /포스코인터내셔널 제공

◇ "MZ세대와의 소통이 곧 회사 성장" 판단… 삼성·LG도 MZ세대 위원회 구성

MZ세대가 경제활동의 주축으로 떠오르면서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는 이같은 인사관리 방식·조직문화 변화가 확산하고 있다. 개인 결정권과 취향, 일과 삶의 조화(워라밸) 등을 추구하는 MZ세대에 맞춰 소통을 앞세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회사 성장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4%가량을 차지하는 MZ세대는 국내 주요 기업 임직원의 60% 수준으로 추산된다.

MZ세대로 구성된 별도 위원회를 구성한 곳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삼성전자(005930)는 MZ세대와 경영진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창구인 '밀레니얼 커미티(Committee)'를 운영하고 있다. 함께 근무하는 다양한 세대가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자는 취지다. 무선사업부와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 메모리사업부 등은 20~30대의 생각과 경험을 사업부장 등 주요 경영진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었다. 경영지원실은 경영진과 MZ세대 간 상호 이해를 위한 'GenZ 멘토단'을 운영해 MZ세대의 성장과 고민을 나누고, 고객 관점에서 제품 트렌드 및 인사이트를 전달한다.

LG전자(066570)도 최근 공개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지난해부터 '새도우 커미티(Shadow Committee)'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새도우 커미티는 MZ세대의 관점에서 고객가치를 발굴하기 위해 해당 세대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협의체다. 상품 기획부터 디자인 조직의 콘셉트 구체화 및 아이디어 창출 단계 등 서비스를 개발하고 출시하는 과정에 MZ세대 구성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이를 반영한다. 경영진의 의사결정 과정에도 새도우 커미티가 직접 참여해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포스코(POSCO)는 회사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Board of Directors)를 본뜬 '영보드(Young Board) 제도'를 도입했다. 조직 내 젊고 유능한 직원들을 뽑아 최고경영자(CEO)와 걸러지지 않은 소통을 하는 일종의 청년중역회의 역할을 한다. 롯데그룹도 기업문화 개선을 위한 중요한 축으로 '주니어보드'를 운영하고 있다. 40여 개 계열사에서 각 5명 내외로 20~30대 직원을 선발해 솔직한 현장의 분위기와 목소리를 대표에게 가감 없이 전달한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지난 6월 사내 공모로 선발된 현장직 영보드 위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포스코 제공

◇ CEO가 나서서 MZ세대 목소리 듣고, 사내벤처 리더에 1990년생 발탁하기도

이외에도 각 기업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MZ세대와 소통을 늘려가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005380)그룹 회장은 2019년부터 타운미팅을 통해 임직원들과 직접 소통하고 있다. 올해 타운홀 미팅은 '현대차그룹의 미래 이야기'를 주제로 개최됐다. 정 회장은 최근 현대차 노사 임금 단체·협상(임단협)과 관련해 "MZ세대 목소리도 많이 반영해서 성과급 이런 부분도 건설적인 방향으로 할 생각"이라며 연구·사무직 노조의 주축이 된 MZ세대와 한 약속을 다시 한번 언급하는 등 이들 세대를 의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SK이노베이션(096770)은 노사가 '세대공감 클랜'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직장 내 세대 갈등 문제 해결책을 마련했다. SK이노베이션 구성원 간 세대공감을 만들기 위해 조직과 문화를 바꾸겠다고 자발적으로 나선 구성원 대표 27명으로 조직된 세대공감 클랜은 주기적으로 워크숍을 통해 세대갈등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방법에 대한 개선안을 만들어 왔는데, 이를 순차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부터 'CEO(최고경영자) VOE(Voice of Employee·직원의 목소리)'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CEO와 임직원들이 한 달에 두 번 화상회의로 만나 회사 주요 이슈에 대해 청취하고 개선하는 사내 행사다. 김종현 사장은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신입사원과 경력사원, 해외 현지 법인 직원 등 150여 명과 온라인으로 만나 의견을 청취했다. LG화학(051910)도 CEO를 비롯한 사업본부장급 리더가 사원 및 선임급 직원들과 쌍방향 소통을 하며 격의 없이 의견을 교환하는 '스피크업테이블(Speak Up Table)'이란 제도를 정기적으로 운영 중이다.

프런티어 팀 리더. 왼쪽부터 박장한 수석연구원, 하헌우 선임연구원, 김의정 수석연구원. /한화시스템 제공

한화시스템(272210)은 방산업계 최초로 도입한 사내벤처 리더에 1990년생 대리급 연구원을 발탁했다. 한화시스템은 사내벤처 프로그램 '프런티어'를 도입하고 직급, 연차 등에 제약 없이 누구나 미래 사업 아이템을 제안할 수 있도록 했다. 새롭게 출범하는 사내벤처 3개팀 중 '초소형 위성용 시스템'을 이끄는 하헌우 선임연구원은 위성체를 보다 작고 가볍게, 그리고 적은 돈으로 만드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을 개발할 예정이다.

재계 관계자는 "최신 트렌드 감지, 경직된 조직문화 혁신, 경영진의 디지털역량 제고 등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되기에 기업들도 리버스 멘토링 등 MZ세대와 소통하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분위기"라면서도 "다만 이같은 제도가 형식적인 행사에만 그치거나, 경영에 실질적으로 반영되지 않는다면 임직원의 피로감만 높일 우려가 있기에 서로 존중하며 진지하게 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