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13일 가석방으로 풀려나면서 재계에서는 그가 해외 출장으로 첫 외부 일정을 재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은 2018년 2월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45일만에 유럽 출장길에 오르며 경영에 복귀했다. 이후 국내보다는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베트남 등 세계를 누비며 해외네트워크 구축에 힘썼다.
이 부회장은 2018년 2월 이후 다시 구속되기 전까지 해외 출장을 활발하게 다니며 글로벌 경영에 나섰다. 출소 45일만인 2018년 3월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이후 캐나다를 방문한 뒤 귀국했다. 5월 중국, 6월 일본, 7월 인도, 9월 유럽을 둘러봤다. 이 부회장은 유럽 출장에서 돌아온 지 닷새만인 그해 10월 곧장 베트남 출장길에 올랐다. 이 부회장은 응우옌 쑤억 푹 베트남 총리와 단독 면담하고 현지 투자 계획도 발표했다. 같은 해 12월엔 인도를 다시 방문했다. 출소 후 거의 한달에 한번 꼴로 해외 출장길에 올랐고, 그해 이 부회장의 국내 공식 일정은 8월 화성 반도체 사업장 점검과 9월 종합기술원 방문 등 두 번 뿐이었다.
이 부회장은 유럽과 인연이 깊다. 이 부회장은 2012년부터 5년간 피아트크라이슬러그룹(현 스텔란티스)의 지주회사인 이탈리아 '엑소르(Exor)'의 사외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피아트그룹 창업자의 외손자인 존 엘칸 피아트그룹 회장과 개인적인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을 첫 해외 출장지로 택할 경우 네덜란드 벨트호벤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 최대의 노광장비 기업 ASML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 ASML은 n나노대의 반도체를 제작하기 위해 필수적인 EUV(극자외선) 노광 장비를 전세계에 독점 공급하는 업체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네덜란드를 방문해 피터 버닝크 ASML CEO(최고경영자)와 회동을 갖고 차세대 EUV 노광장비 공급 확대를 논의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가석방 신분이라 해외 출장을 가려면 법무부 심사를 받아야 한다. 해외 방문 목적이 명확해야 출국 승인을 받는다.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신분이 확실하고 도피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법무부가 해외 출장을 불허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은 2019년에도 2월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방문을 시작으로 아랍에미리트, 인도,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 10여차례 해외 출장에 올랐다. 그러나 지난해 대법원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이 재개되면서 해외 출장길이 막혔다. 그리고 지난 1월 이 부회장은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으며 재수감됐다.
삼성그룹이 총수 부재로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M&A)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어 곧바로 미국행을 택할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 건설을 위한 20조원대 투자 프로젝트 확정을 앞두고 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모바일, 인공지능, 5세대 이동통신 등 주력 및 신사업을 비롯해 삼성SDI(006400)의 첫 미국 배터리 공장 신설도 추진하고 있다.
특히 파운드리 투자가 시급하다.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미국의 인텔은 파운드리 3위 기업인 글로벌파운드리 인수를 추진 중이다. 여기에 파운드리 업계의 압도적 1위(1분기 시장 점유율 55%)인 대만의 TSMC는 삼성전자와 초격차를 벌리겠다며 미국과 일본, 유럽 등지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TSMC는 향후 3년간 파운드리 사업에 1000억달러(약 114조)를 투자하고, 미국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생산 공장 5개를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빠른 시일 내 미국 현지 인사들과 만나 파운드리 공장 부지를 선정하고 연내 착공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가 미국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위탁 생산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미국 현지 방문 필요성이 제기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달 말부터 모더나 백신 완제품 시범생산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부회장이 완전한 자유의 몸이 아니라는 점, 일부 여권 인사와 시민단체 등이 그의 가석방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 불법승계 등 사법리스크가 남아 있다는 점 등 여전히 경영 일선에 복귀하기 어려운 환경이라 2018년처럼 적극적인 해외 출장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