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096770)이 배터리 부문을 분할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히자 주가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 앞서 배터리 부문을 분할한 LG화학(051910)은 배터리 분할 발표 이후 주가가 약세를 보이다 반등에 성공했지만,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과 달리 자체 사업을 남겨두지 않고 성장성 높은 자회사의 지분율이 줄고 있어 장기적으로 기업가치가 낮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SK이노베이션 주가, 6월 말 이후 20% 하락
6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오는 9월 16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배터리 사업 부문을 분할하는 안건에 대한 승인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후 10월 1일 'SK배터리 주식회사(가칭)'를 공식 출범한다. 분할 방식은 SK이노베이션이 신설 법인의 발행 주식 총수를 소유하는 단순·물적 분할 방식으로, SK이노베이션이 신설 법인의 지분 100%를 갖게 된다. 이후 SK이노베이션은 친환경 포트폴리오 개발을 담당하는 지주회사로서의 역할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같은 계획을 발표한 지난 4일, SK이노베이션 주가는 급락했다. 이날 장중 8% 가까이 내려갔다가 가까스로 낙폭을 줄여 3.75% 하락으로 장을 마감했다. 5일 역시 2.05% 하락했다. 앞서 지난 7월 1일 '스토리데이' 행사에서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 사장이 지주사 전환과 배터리 사업 분할을 예고했을 때도 SK이노베이션 주가는 하루 만에 8.8% 급락한 바 있다. 이후에도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SK이노베이션 주가는 지난 6월 말 대비 20% 가까이 하락한 상황이다.
앞서 배터리 사업 분할에 나선 LG화학의 주가 흐름을 고려하면 SK이노베이션의 주가 충격이 오래 가진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LG화학은 지난해 9월 16일 배터리 사업 분할을 발표한 당일 주가가 5% 넘게 급락하는 등 70만원대에서 60만원대 초반까지 밀려났다. 당시 7거래일간 주가는 16%가량 떨어졌다. 그러나 두달도 채 안돼 70만원대를 회복했고, 올해 연초엔 100만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현재 주가는 분할 발표 이전 대비 약 15% 오른 수준이다.
◇ "사업 떼어내는 SK이노, 투자 이유도 함께 사라져"
업계는 장기적으로는 SK이노베이션의 주가 할인폭이 LG화학보다 커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LG화학은 배터리 사업만 물적분할한 반면, SK이노베이션은 지주사 전환을 선언했다는 점이 가장 큰 요인이다. LG화학은 배터리 사업을 떼어내도 성장성이 높은 배터리 소재 사업과 석유화학 사업, 바이오 사업을 보유하고 있다. LG화학은 올해 2분기에 석유화학에서만 1조325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는데, 이는 전체 영업이익(2조2310억원)의 59%에 해당한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보유하고 있던 사업을 속속 덜어내면서 자체적인 수익 창출 능력에 물음표가 붙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미 윤활유 사업을 SK루브리컨츠로, 배터리 소재 사업을 SK아이이테크놀로지(IET)로 분할했다. 석유개발(E&P) 사업도 10월 1일부로 배터리 사업과 함께 별도 법인으로 출범한다. SK이노베이션의 본업인 정유사업도 매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자회사 지분까지 속속 팔아치우고 있다. 올해 초엔 SK루브리컨츠 지분 40%를 매각했고, 지금은 SK종합화학 지분 49%에 대한 투자자를 찾고 있다.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SK이노베이션은 수산화리튬 회수 기술을 통해 2025년 EBITDA(세전영업이익) 목표 3000억원을 제시하지만, 석유·화학·윤활유 사업의 지분 매각에 따른 이익 감소를 상쇄하고 자체 생존이 가능한 선순환 사이클로 진입시키기엔 긴 시간이 필요해보인다"며 "포트폴리오의 딥 체인지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에 투자해야 할 포인트가 하나씩 삭제되고 있고, 회사가 보유한 포트폴리오를 가진 동종 산업 내 개별 투자 대안도 많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이 새로 출범할 배터리 법인의 지분율을 얼마나 보유할지도 관건이다. LG화학의 경우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한다 해도 최소 70% 이상의 지분율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일단 신설 배터리 법인의 지분을 100% 보유하지만, 기업공개(IPO) 시 지분율을 얼마나 보유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사업에만 2025년까지 17조원을 투자한다고 했는데, 2023년에야 EBITDA 기준 1조원 수익이 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전까진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대부분 투자 자금을 외부에서 조달해야 할 경우 신설 법인의 지분율도 높게 가져가기 어려워 보인다"라고 말했다. 현금 창출력이 떨어지면 배당률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 "이미 본궤도 오른 사업 분사, 반복되면 韓 디스카운트" 지적도
결국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보다는 앞서 지주사 또는 중간지주사로 전환한 기업들처럼 기업가치가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국내의 그룹 지주사들을 보면, 시가총액이 개별 사업을 보유한 계열사보다 낮다. ㈜SK(034730)의 시가총액은 19조5953억원(이하 6일 종가 기준)으로,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000660)(약 85조9043억원)의 4분의 1에도 못미칠 뿐더러, 최근 상장한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약 18조7042억원)와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LG(003550)의 시가총액도 14조9121조원에 불과하다. LG화학(약 59조4388억원), LG전자(066570)(약 25조6927억원), LG생활건강(051900)(약 22조7713억원) 등 주요 자회사들은 이보다 한참 앞서있다.
탄탄한 사업을 보유하고 있던 기업이 지주사로 전환하는 데 대해 시장은 투자자 기만 행위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외국계 사모펀드 관계자는 "사업 초기에 분사해 기업을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본궤도에 올라 기업가치에 반영된 사업 부문을 분사해 상장하는 것은 외국에선 볼 수 없는 기업 운영"이라며 "이런 방식이 반복되면 기업은 물론 한국 주식시장의 디스카운트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