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억만장자인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과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가 자신이 세운 우주탐사 기업을 통해 우주 관광에 성공하는 등 우주산업 중심축이 빠르게 민간 영역으로 옮겨지면서 우리나라 우주산업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미 미사일 지침 해제 등으로 인해 우주산업 개발의 문은 열렸으나, 여전히 정부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1일 방산·우주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최근 우주 관광으로 대표되는 우주산업을 이끌 기업으로 한화(000880)와 한국항공우주(047810)산업(KAI)이 주목받고 있다. 우주 관광은 미래 유망 산업인 우주 비즈니스를 위해 기술력을 입증하는 일종의 검증대다. 블루 오리진은 우주 관광에 쓰는 뉴셰퍼드 로켓에 이어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대형 로켓 뉴글렌을 개발하고 있다. 오는 9월 민간 우주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도 미국 정부의 달 유인 착륙선을 맡았고, 이후 화성 유인 탐사도 노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5월 사거리 800㎞ 초과 미사일(고체 로켓)을 개발하지 않는다는 한미 '미사일 지침'이 해제되면서 본격적인 우주개발 산업의 문이 열렸다.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통해 축적된 기술은 향후 민간 우주개발 사업에 촉진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당장 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사거리 1000~3000㎞의 중거리탄도미사일(MRBM) 개발 가능성이 높은데, 정부 발주가 시작되면 지대지 미사일을 주로 만드는 ㈜한화와 자체 동력으로 목표 지점까지 날아가는 크루즈미사일에 특화된 LIG넥스원(079550)의 사업 수주 가능성이 높다.
한화그룹은 ㈜한화 외에도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엔진을 담당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와 차세대 중형위성 1호의 탑재체를 개발한 한화시스템(272210)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이들 기업의 협력을 통한 우주 기술 개발 시너지를 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룹 차원에서도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009830) 사장이 팀장을 맡은 우주사업 전담조직(TF) '스페이스 허브'팀을 출범하고, 쎄트렉아이(099320)에 이어 추가 항공우주 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
누리호의 전체 조립을 맡은 KAI도 올해 초 우주산업 트렌드 변화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뉴 스페이스 태스크포스(TF)'를 출범했다. 내년 상반기에는 시스템 설계부터 본체 개발·제작·조립·시험 및 발사까지 KAI가 총괄한 차세대중형위성 2호를 발사할 예정이다. KAI는 스페이스X와 전략적 협력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최근 스페이스X와 차세대 중형위성 4호 발사체 계약을 체결했고, 이 기업의 아시아 시장 진출 등 공동 협력 방안을 논의 중이다.
세계적으로 우주산업은 미래 먹거리로 꼽힌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우주산업이 지난해 3500억달러에서 오는 2040년에 1조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모건스탠리의 경쟁자인 투자은행 UBS도 오는 2020년대 말까지 우주산업이 8000억달러 규모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만 해도 280억달러(약 32조원)가 우주산업에 투자됐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단기간 내 우주산업이 상업화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우주 강국을 중심으로 우주 비즈니스 주도권이 국가에서 민간으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 여전히 정부 발주 사업의 틀에 갇혀있다는 게 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우주 관련 프로젝트는 정부가 주관하고, 민간 기업들은 이를 용역받는 구조가 견조해 사실상 기술력 축적이 어렵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정부 지원을 강화해 민간기업 참여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발행한 '주요국 우주산업 국제비교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우주개발 예산 규모는 7억2000만 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0.04%에 머물러 있다. G5(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중국, 러시아와 비교하면 최저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간 투자와 기술 수준 역시 저조하다.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민간 우주산업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미국 264억달러 ▲프랑스 34억달러 ▲영국 24억 달러 ▲독일 20억 달러 ▲일본 8억달러 등이었다. 한국은 4억달러로 가장 적었다. 국내 우주개발 담당 기관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예산과 인력 규모는 각각 4억8000만달러, 1000여명으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우주산업의 핵심인 발사체 기술 역시 선진국과 비교하면 상당히 뒤떨어져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발표한 '2020년 기술수준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기술 수준을 100%로 가정할 때 유럽연합(EU)은 92%, 중국·일본이 85%지만 우리나라는 60%에 불과했다. 이같은 기술 격차를 시간으로 환산하면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18년, 중국·일본과는 8년씩 뒤처진 셈이다.
방산·우주업계 관계자는 "G5·중국·러시아 등 우주 강국처럼 독립된 우주개발 전담 조직을 갖추고 민간 기업을 기술이전 대상이 아닌 투자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예산 규모를 러시아와 일본 수준인 30억달러대로 늘려 민간기업 참여를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