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골판지 원지 부족 사태 등에 시달려오던 국내 골판지업계가 최근 연이은 원지 가격 인상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골판지 원지는 표면지(겉지)와 이면지(속지), 표면지와 이면지 사이에 들어가는 구불구불한 골심지 등 골판지를 제작하는 데 사용되는 재료다. 이들 원지를 접착해 '골판지 원단'을 만들고 골판지 원단을 이용해 종이박스를 만든다.
21일 제지업계에 따르면 한국골판지포장산업협동조합(골판지조합)은 지난 16일 골판지원지 제조기업들에 '공급자우위 시장지위 남용행위 중단 촉구'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일부 원지사의 가격 인상에 수요처인 포장업체들이 모인 골판지조합이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골판지조합은 지난 15일 ㈜아진피앤피의 골판지 원지 가격 인상 통고에 대해 "2차례 인상에 이어 4개월만에 또다시 인상을 요구하는 무모한 짓은 공급자우위 시장지위 남용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골판지 원지 가격 인상 통고는) 폐지 가격 인상을 핑계로 경영부실을 만회하려는 무책임한 책임전가행위"라며 "정부의 폐지수출입신고제를 악용해 전문골판지기업과 박스기업의 경영희생 기반을 약탈하는 기만행위에 해당한다는 판단"이라고 했다. ㈜아진피앤피는 오는 8월 1일 출고분부터 가격을 약 10~13% 인상하기로 했다.
골판지업계는 지난해 10월 대양제지 안산공장 화재로 촉발된 원지 공급 부족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골판지 원지 생산업체들과 이를 가공해 완제품인 박스를 만드는 기업들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골판지 원지 가격은 대양제지 화재 이후 현재까지 총 3차례나 올랐다. 업체별로 요구한 가격 인상 폭은 차이가 있지만, 지난해 10월엔 약 25% 올랐고 올해 3월에도 12~15% 가량이 인상됐다.
골판지 원지 생산 업체들은 주재료인 폐지 물량 감소와 이로 인한 가격 상승 등을 원지값 인상의 이유로 꼽았다. 환경부가 지난해 7월 3일 폐지 수출입신고제를 시행하면서 폐지 수출입에 제한이 생겨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양제지 화제가 겹치면서 공급불균형이 심각해졌다는 주장이다. 한국제지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골판지 원지 가격은 화재 이전 톤(t)당 45만원에서 이후 53만원으로 상승했다. 공급량 역시 화재 이전에는 월 39만t으로 공급 과다였지만, 화재 직후 10만t이 부족하게 됐다.
이에 종이박스 관련 업체들은 잇따른 가격 인상이 골판지 산업의 맨 마지막에 있는 영세 박스제조업체에 부담을 전가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지난해처럼 골판지 원지 가격이 25% 오를 경우, 다음 단계인 원단은 약 15% 인상된다"며 "이렇게 되면 박스제조업계는 최종적으로 50% 수준의 인상된 가격 부담을 떠안는 셈"이라고 말했다.
골판지조합 관계자는 "가격인상 이전에 어떠한 자구적 노력도 없이 즉각적으로 인상을 단행하는 것은 상생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라며 "골판지 원지가격 인상 통고를 즉각 중단하고, 포장업계 및 박스업계와 상호협력해 가격인상의 원인이 되는 폐지의 수급 및 가격 안정화에 선제적 노력을 다해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