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사들이 올해 '수주 랠리'를 이어갔으나 하반기까지는 실적이 부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2년 전 저렴하게 수주한 선박들이 본격적으로 실적에 반영되기 시작했고, 선박 건조 비용의 20%를 차지하는 후판(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 가격도 인상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20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은 오는 21일 컨퍼런스콜을 열고 2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삼성중공업(010140)과 대우조선해양도 다음 달 중 실적을 발표할 계획이다. 국내 조선 빅3 모두 올해 수주 목표를 빠르게 채웠다. 한국조선해양은 6개월여 만에 올해 수주 목표 149억달러(약 17조원)의 102%를 수주해 목표치를 조기에 초과 달성했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수주 목표 달성률도 각각 71%, 80% 수준으로 하반기 중 무난하게 달성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울산에 있는 현대중공업 조선소. /한국조선해양 제공

그러나 도크(dock·배를 만드는 작업장)를 채우고도 웃을 수 없다는 게 조선업계의 설명이다. 조선업체들은 선수금을 적게 받고 인도 대금을 많이 받는 이른바 '헤비테일' 방식으로 건조계약을 맺는다. 올해 수주한 선박들이 실적에 반영되는 시점은 선주사들에 선박을 인도하는 1~2년 뒤부터다. 뒤집어보면 올해 실적은 1~2년 전 수주한 선박들이 반영되는 셈이다. 2019년과 2020년은 극심한 조선업계 불황기였다. 당시 수주한 선박들 대부분 저가 수주란 게 업계 설명이다. 경남 거제의 한 조선기자재 업체 고위 관계자는 "당시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선 불가피했던 것"이라면서도 "저가 수주는 결국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조선업계 전반에 피해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당장 실적에 반영되는 후판 가격은 늘어날 전망이다. 조선업계와 철강업계는 매년 반기마다 후판 가격을 협상하는데, 철강사들은 올해 상반기 후판가를 톤(t)당 10만원을 인상한 데 이어 하반기에도 가격을 올릴 계획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광석 가격이 t당 200달러를 웃돌고 있어 제품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포스코(POSCO)는 하반기 후판 가격으로 t당 115만원을 제시했다. 상반기 후판 공급가가 평균 80만원대였던 것을 고려하면 30만원 이상 인상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후판 수입 물량도 마땅치 않아 사실상 주도권은 철강업계가 쥐고 있다. 하반기에도 후판가가 인상될 가능성이 큰 이유다.

후판가는 통상 선박 건조 비용의 20%를 차지한다. 증권가에선 후판 가격이 철강업계 주장대로 인상될 경우 조선 빅3의 비용 부담이 1조6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올해 1분기에도 후판 가격 상승 비용이 반영되면서 조선업계는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 한국조선해양은 전년 동기 대비 44.5% 감소한 영업이익 675억원을 기록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영업손실 2129억원을 내 적자 전환했다. 삼성중공업도 영업손실 5068억원을 기록해 적자 폭이 커졌다.

현대제철 당진 일관제철소 모습. /현대제철 제공

올해 2분기 실적 역시 약세일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후판가 상승을 대비해 충당금을 미리 반영하면 '어닝쇼크'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한국조선해양이 2분기 1300억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내다봤다. 같은 기간 대우조선해양도 184억원, 삼성중공업도 같은 기간 1137억원의 적자를 낸 것으로 예측했다. 3사 모두 지난해 2분기 대비 적자 전환이다.

조선업계의 부진한 실적은 최소 하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해양은 2022년부터, 삼성중공업은 2023년부터 흑자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원자재비나 인건비 등은 앞으로도 오를 수밖에 없다"며 "이제부터 비용절감보다 선박을 제값에 수주해오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