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을 입법 예고한 가운데, 경제계가 지속적으로 제기한 쟁점들이 해소되지 않은 채 제정안이 마련됐다며 비판했다. 특히 경영책임자 의무인 안전보건 관리체계 관련한 내용과 법령이 불명확해 의무범위를 예측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14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관련 산업계 긴급 대책회의'를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는 조선·자동차·타이어·반도체·디스플레이·건설·철강·석유화학·정유 등 주요 업종의 안전·보건 관계자와 업종별 협회가 참석했다.

정부는 지난 9일 노동자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대표이사 등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인력과 예산을 충분히 편성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날 경우 처벌하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시행령 제정안은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제공

회의에 참석한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경제계가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쟁점들이 해소되지 않은 채 시행령 제정안이 마련됐다"며 "연내 보완입법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대로 시행령이 제정될 경우 사고발생 기업의 경영책임자는 형사처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법률상 모호했던 경영책임자 의무가 시행령에서조차 매우 불명확해 어느 범위(수준)까지 의무를 이행해야 법 준수로 인정되는지 전혀 알 수 없다"고도 했다. 안전보건관리체계에 규정된 '충실하게' , '적정한 예산', '적정한 비용과 수행기간', '적정규모 배치','충분한 상태'등의 문구로는 경영책임자의 의무범위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안전·보건 관계법령이 무엇인지조차 시행령에 전혀 규정돼 있지 않아 경영책임자가 의무 내용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이날 회의에서는 업종별 우려사항도 제기됐다. 먼저 옥외작업 비중이 매우 높은 조선·건설업종 등은 직업성 질병 목록에 규정된 열사병에 대해 "사업주의 다양한 보건관리조치에도 불구하고 여름철에는 필수적으로 열사병 환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중증도(부상자와 같은 6개월 이상 치료) 기준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회사의 대표이사가 매년 수사 및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화학물질 취급 작업이 많은 반도체·디스플레이업종은 "중대시민재해 대상인 원료 또는 제조물 목록 중 포괄규정이 도입될 경우, 경영책임자가 관리해야 할 원료 및 제조물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해져 시민재해 발생 시 법적용 대상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유업종은 "중대시민재해 대상인 공중이용시설에 주유소와 가스충전소를 포함시키고 단순히 면적으로 적용대상을 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사업장 내 유휴부지나 임대(음식점, 편의점 등)공간은 별도의 사업자가 관할하고 있는 만큼 적용기준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총은 연내 보완입법이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책회의 결과를 정부부처에 제출한다고 밝혔다. 이동근 경총 부회장은 "입법예고된 시행령 제정안으로는 내년 법 시행 시 발생할 수 있는 현장의 혼란과 부작용을 해소하기 어렵다"며 "업종별로 제기된 다양한 의견들을 정부가 입법예고 기간 중 충분히 수렴하여 시행령을 합리적으로 제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