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규제의 영향으로 앞으로 10년간 한국 조선업계가 일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다만 2000년대 호황기와 같은 대규모 발주가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8일 한국수출입은행(수은) 해외경제연구소 '해상환경규제 효과에 의한 신조선 발주 전망'에 따르면 앞으로 10년간 연평균 3700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 규모의 신조선 발주가 있을 전망이다. 연평균 노후 선박 교체 수요 1926만CGT와 해운 시장 성장에 따른 신규 수요 1790만CGT를 합친 값이다. 글로벌 조선업이 유지되는데 필요한 최소 발주량을 3500만CGT로 추정하는 만큼 일감 확보는 가능하다는 의미다. 추정치 산출에서 제외한 해양플랜트나 크루즈 등을 포함하면 연간 4000만CGT 수준이다.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세계 발주량은 2402만CGT다.

지난달 30일 자유의 여신상 모형을 실은 컨테이너선이 프랑스에서 뉴욕에 도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환경규제로 발주되는 물량 중 한국의 수주량은 연간 1050만CGT에서 1240만CGT 수준으로 추정된다. 올 상반기 한국의 누적 수주량이 1047만CGT인 점을 고려하면 '슈퍼 사이클'이라고 부를 수준은 아닌 것이다. 한국의 수주 점유율을 28.1%~32.8%로 산정했다. 올해 들어 6월까지 한국 조선사의 수주 점유율은 43.6%였다.

양종서 수은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한국 조선업계의 점유율이 높은 대형 컨테이너선의 경우 아직 선령이 낮아 2026년까지 교체 수요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아 보수적으로 평가했다"며 "고효율·고품질 선박의 가치가 높아지면 연간 1500만CGT(40%)까지 수주량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환경규제 효과를 제외할 경우 연평균 글로벌 발주량이 2500만CGT에서 2600만CGT에 그칠 것으로 해외경제연구소는 내다봤다. 노후 선박 교체 수요가 핵심이다. 환경규제에 따라 만들어지고 30년까지 운항하던 선박들의 '선령'이 짧아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제해사기구(IMO)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는 지난달 76차 회의를 열고 현존선박에너지효율지수(EEXI)와 탄소집약도(CII) 등급제를 2023년부터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선박은 운항속도를 줄이거나 저감 설비를 장착해야 하고, 최악의 경우 시장에서 퇴출된다. 각 기준치를 살펴볼 때 노후 선박들이 정상적인 운항을 하기 어렵다.

시장과 업계에서 제기하는 조선업 '슈퍼 사이클'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은 해외경제연구소는 회의적으로 봤다. 환경규제 조치가 매우 강하게 이어진다면 앞으로 5년간 연간 5200만CGT까지도 발주량이 증가할 가능성은 있지만, 노후선의 숫자는 한계가 있고 해운 시장의 고성장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반짝 호황' 후 장기간의 불황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선주들의 투자 여력이나 금융권의 위험 관리 차원에서 봐도 선박 투자를 크게 늘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IMO가 2026년 이후 EEXI와 CII 등 규제효과를 평가해 재검토하기로 한 만큼 선박 교체 투자가 과열되면 규제를 오히려 완화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양 선임연구원은 "제시한 추정치가 시장의 기대감보다 상대적으로 낮지만 현실적인 수치를 제시하고자 했다"며 "무탄소 선박이 출시되는 시기나 주요국 정부 정책, 선종별 시장 상황 등 여러 변수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