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이른바 '가위바위보' 입찰로 논란을 빚었던 다목적무인차량 신속시범획득사업이 주파수 확보에 난항을 겪으면서 결국 납기가 지연된 것으로 확인됐다. 민간의 우수한 기술을 무기체계에 신속하게 적용한다는 제도의 취지가 기관간 미루기로 흐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목적무인차량은 임무에 따라 다양한 장비를 탑재하고 운용할 수 있는 2톤(t) 이하의 원격 또는 무인운용 차량을 말한다. 위험한 전투 상황에서 사람이 탑승하지 않은 채 보병부대를 지원해 수색 및 정찰, 화력지원, 환자 후송 등의 임무를 할 수 있다. 아군의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미래 전력인 셈이다. 지난해 하반기 신속시범획득 사업으로 추진됐으며, 현대로템과 한화디펜스가 각각 자사의 차량을 제안하며 경쟁을 벌였고 현대로템(064350)이 수주했다.

현대로템이 개발한 다목적무인차량 'HR-셰르파(HR-Sherpa)'. /현대로템 제공

6일 군과 방산업계 등에 따르면 현대로템이 지난해 12월 3일 방위사업청(방사청)으로부터 수주한 다목적무인차량의 납품 기한은 당초 6월 2일이었으나 한 달 이상 지난 이달 7일 납품하기로 했다. 무인차량을 운용하기 위해선 주파수를 할당받아야 하는데, 주파수 획득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이번 납기 지연은 당초 주파수 사용 승인을 받기로 했던 군이 이를 방사청에 떠넘기면서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 당시 군은 직접 합동참모본부로부터 주파수 사용 승인을 받기로 했지만 이 과정이 늦어지자 올해 초 방사청에 업무를 이관했고, 방사청은 이를 현대로템에 넘기면서 계약 기한을 수정한 것이다. 주파수 할당에는 보통 3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방산업계에서는 납기 지연으로 국방혁신 사업의 본래 취지가 다소 퇴색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신속시범획득사업은 인공지능(AI)·드론 등 기술발전 속도가 매우 빠른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접목된 첨단 방산 제품을 빠르게 사용해보고 도입 여부를 신속하게 결정하겠다는 취지로 방사청이 지난해 처음 시행했다. 해당 사업은 시범 운영되다가 지난 4월 공식화됐다.

그동안 우리 군의 무기체계가 양산되기까지는 소요제기부터 연구개발 등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를 보완하고자 소량이라도 제품을 단기간에 군에 도입해 운용해보고, 작전요구성능(ROC)이 적합하다고 판단하면 군의 소요제기 후 해당 제품을 곧바로 양산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신속시범획득사업 수주 업체는 계약 체결일로부터 6개월 안에 제품을 군에 납품해야 한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신속시범획득사업은 제도 이름처럼 속도가 생명인 셈인데 이런 어이없는 이유로 쉽게 미뤄지면 제도 목적을 살릴 수 있을지 우려된다"면서 "군과 방사청이 주파수 할당 작업을 서로 미루면서 다목적무인차량 뿐만 아니라 주파수가 필요한 다른 제품 도입 역시 늦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화디펜스가 개발의 지능형 다목적무인차량. /한화디펜스 제공

신속시범획득사업은 지난해 도입된 이후 크고 작은 논란에 시달려 왔다. 기획재정부는 예산 집행의 투명성 측면에서, 감사원은 사업 추진 간 방산 비리 발생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은 지난해 10월 방사청 국정감사에서 최저가 입찰제로 인해 중소기업의 아이디어만 빼앗기는 '기술탈취'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목적무인차량 신속시범획득사업은 '가위바위보' 논란도 있었다. 이 사업의 예산은 38억3600만원 규모로 작지만, 무인차량 및 자율주행 시스템 도입의 시발점이기에 만약 전력화될 경우 낙찰자가 수천억원에 달하는 후속 사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이에 현대로템과 한화디펜스는 모두 입찰 가격을 '0원'으로 제시하는 등 출혈 경쟁을 펼쳤다.

똑같은 가격을 제시하면 추가 옵션을 평가하는데, 방사청은 이 성능까지 동일하다고 판단해 전자추첨 방식의 '가위바위보'로 낙찰자를 선정했다. '국가계약법 시행령(제47조)'과 '국방전자조달시스템 전자입찰 유의서(제18조)'에 따라 두 업체가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가위바위보' 중 하나를 5회에 걸쳐 선택하게 했고, 최후의 승자로 현대로템이 결정됐다. 그러나 첨단 무기체계를 도입하는 사업에서 세밀한 성능 비교가 아닌 가위바위보 방식으로 사업자를 선정했다는 비판이 일었고, 방사청은 결국 지난 3월 무기체계 성능이 비슷할 경우 복수 시범운용을 추진하는 것으로 관련 규정을 바꿨다.